'괴짜 인물' 아레티노를 통해 기존의 르네상스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근사한', 그러니까 예술적인 품격 차원에서 많이 이야기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건축물, 조각 등을 비롯해 문학작품들 대개가 그러하다. 그런 작품을 남긴 이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에라스무스 등임을 보면, 따라서 흔히들 르네상스 시대를 '천재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여기 색다른 한 인물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가 결코 천재들만의 시대가 아닌 '괴짜들'의 시대이기도 했음을 알려주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최근 서양에서도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 1492~1556)이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아레티노는 르네상스를 다룬 책에는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단지 돈을 벌 욕심으로 음란한 책들을 쓰고 제후와 명사(名士)들에게 협박조의 편지를 보냈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통속작가라는 수백 년 동안의 비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인물 됨됨이와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지나친 편견의 소산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기의 문화지형과 시대정신의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오히려 엘리트 계급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상하층 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한 문화 아이콘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처세로 교황의 최측근 지위에까지 오르다! 
아레티노는 1492년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의 소도시 아레초의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그는 10대 초에 가출하여 페루자로 진출하고 거기서 첫 작품으로 작은 시집을 내기도 한다. 몇 년 뒤, 그는 그가 생각해둔 최종 목적지인 로마로 진출하여 당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부호 몇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던 아고스티노 키지의 저택에 사환으로 들어가 입신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때 그는 교황을 비롯한 고관대작들과 라파엘로 같은 예술의 거장들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사건은 교황 레오 10세가 애완하던 코끼리의 죽음을 당시의 탐욕스러운 추기경들에 빗댄 기발한 착상의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를 계기로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게 된 그는 교황궁에서 나름의 입지를 넓혀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교황이 서거하고 새 교황 하드리아누스가 등극하자, 그의 입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것도 잠시, 1년 8개월만에 하드리아누스도 서거하고 메디치가 출신의 새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선출됨으로써 그의 입지는 다시금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인생의 획을 가르는 새로운 사건에 연루되니 그것이 바로 서양 최초의 포르노그래피의 탄생을 알린 『체위』와 『음란한 소네트』가 결합된 작품이 불러온 파장이었다. 16가지 성교 장면을 드로잉한 줄리오 로마노(라파엘로의 제자)와 그것을 판각(板刻)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작품 『체위』에 『음란한 소네트』 시(詩)를 지어 붙인 아레티노의 이 기묘한 작품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허위로 가득 찬 인간의 그릇된 도덕성 ― 이는 곧 그가 성(性)에 대한 오랜 위선마저도 전복하고자 하는 대담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 을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과 이후의 작품 『6일간의 대화』도 지금 읽어보면 포르노그래피라기보다는 사회풍자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비록 세밀한 묘사가 과도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갖가지 사회문제들은 그러한 묘사들을 그 자체로 즐기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사건이 가져온 결과는 아레티노의 목숨까지 노리는 사태를 촉발시켰다. 이를 계기로 그는 유력자에게 몸을 의탁하는 코르테자노(정신, 廷臣)로서의 궁정 생활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1527년 봄 베네치아로 가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이후 30년 동안 그곳에서 닦은 인맥을 십분 활용하여 유럽의 명망 높은 군주제후,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들, 그리고 예술계의 거장들과 서신을 교환하며 명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권력자들을 구슬려 막대한 돈과 선물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어느 누구의 가신으로 머물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당대의 시인 아리오스토는 그의 이러한 면모를 일컬어 "군주를 벌하는 채찍, 신이 내린 피에트로 아레티노"라는 별칭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의 30년 세월 동안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 걸쳐 숱한 작품을 발표했다. '음란한' 창녀들의 대화편에서부터 예수와 성인(聖人)의 전기까지, 식자층과 귀족들의 위선과 허세를 희롱하는 사회 풍자적 성격의 희극부터 고전적 장엄미를 갖춘 훌륭한 비극도 썼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가 보낸 몇천 통의 편지를 여러 권의 책으로 펴낸 르네상스기 최초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 목적은 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버는 데 있었다.

16세기 '민중적 르네상스'의 전범을 보여준 아레티노! 
아레티노는 16세기 초 르네상스 성기(盛期)라 불리는 광휘의 시대가 낳은 주목할 만한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그는 고전주의와 휴머니즘의 조류가 최고조에 달한 바로 그 시기에, 머지않아 반(反)고전주의와 매너리즘의 경향이 득세할 것임을 알리는 전령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독특성은 매우 통속적 또는 민중적 스타일의 글쓰기를 통해 기존의 엘리트 문화에 도전했다는 데 있다. 그가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였음에도 문학사에 쉽사리 등재되지 못한 까닭도 주제와 문체의 통속성을 폄하해온 주류 문단의 편향 탓이다. 그러나 아레티노는 통속성이 비범함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레티노의 작가정신은 어떤 면에서 마키아벨리를 닮았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현실적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면, 아레티노는 성과 섹슈얼리티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라틴어를 전혀 몰랐다는 점에서 그는 엘리트 문화 계층에 속하지 않았으며, 속어(俗語)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반대중의 정서와 문화를 대변했다. 여기에 더해 당시 급속도로 발전한 인쇄, 출판문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대량생산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민중문화의 확산에 기폭제가 되었다.
이 책은 10여 년 가까이 아레티노에 관한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16세기 르네상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서양사 연구의 중요한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