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를 보면서 사유와 감성의 체계 그리고 조직의 구조와 의사소통의 형식에 있어 ‘어떤’ 진보는 (극단적인) 보수와 상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 심지어 봉건적 ‘신심’에 기반한 전근대적 유사 종교와도 상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1980년대 이념 논쟁 이후 거의 진보하지 않은 진보의 한 분파적 ‘형식’이, 진보라 주장된 ‘내용’을 기각하고 무화시킨 역사적 사례 하나를 목도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치 영역에서 작동하곤 하는 ‘진보/보수’의 이분 체계를 매개 없이 문화 예술 영역에 곧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학과사회』가 오랜 세월 고수해온 입장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종종 우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이 오래 묵은 예술 양식에 갇혀 아사해가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고, 소위 ‘한국적 모더니티의 특수성’이란 일반화된 전제가 철도 지나고 유효성도 다해가는 미적 형식을 지원하고 합리화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게다가 정치가 미학을 거의 완전히 봉합해버린 1980년대 이후로, 미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의 무매개적인 동일화를 부추긴 일각의 논의는 예술에 있어 진보란 항상 그 주장되는 내용의 층위보다는, 예술에 대해 본질구성적인 형식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간과하게 한 측면이 있다. 이즈음 우리는 예술사에서의 이와 같은 상식이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사태에 자주 직면하곤 한다. 가령, 우리 사회 지배계층의 비리와 위선을 다룬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이나 영화가 상업적으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출판자본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사태, 메이저 기획사와 무관하게 활동한다는 자부심이 유일한 ‘구별 짓기’의 기준이었던 ‘인디’ 밴드들이 공중파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서 너나없이 기쁘게 경쟁하는 사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문학적 전위’라거나 ‘본연의 락 스피릿’ 같은 어휘들은 한갓 광고 카피와 유사해지고.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서의 진보는 오로지 미학적 퇴보(혹은 답보) 속에서만 보장되고 상찬받으며, 더한 경우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예스러운 모험이 고작해야 무대에서의 안무를 합숙소에 모여 연습(당)하지는 않았음의 알리바이 정도로 추락한다. 이번 호 특집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가 비판적으로 짚어보고자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태의 이면이다.
〈특집〉의 총론격인 「자본주위, 전위주위, 급진주의」에서 김태환은 러시아 미래파를 예로 들어 역사적으로 ‘예술적 전위’가 항상 ‘정치적 전위’와 동일하거나 화해롭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예술적 전위는 자신과 적대적인 자본주의적 상품경제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적의 적’인 정치적 전위주의와도 죽이 잘 맞는 동료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존중’ 없는 사회의 대중문화, 그 욕망과 미망에 관한 단상」에서 김예림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의 글은, 많이 팔린 소설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각색되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두 ‘대중문화’ 텍스트들(‘도가니’ ‘완득이’)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과 비리에 대해 울린 경종의 효과는 그대로 인정하되, 이 두 텍스트 쌍이 한 편에서는 어떤 식으로 ‘미적 정치성’에 대해 무심하며 방조적인지 예리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김작가의 글 「한국 음악의 현재, 인디냐 진보냐」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현재 한국의 인디 음악이 처한 상황을 통해 풀어낸다. 서구 인디 음악의 역사를 개관한 후, 한국에서 인디 음악의 대두와 그 부침의 과정을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그의 글은, 한 편의 한국 대중음악 약사이자, 인디 정신 부재 상황에 대한 비판적이지만 비관적이지는 않은 보고서다.  

이번 호 〈시〉란에는 여덟 명의 시인들이 신작시들을 보내주었다. 황동규, 박주택, 심재상, 김근, 김언, 오은, 이용임, 김승일 들이다. 한눈에 현재 한국 시단의 세대별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기대한다.〈소설〉란에는 김연수와 한강 두 작가의 작품을 싣는다. ‘타인의 고통’ 2부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두 작가의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동연적이다. 두 작가 모두 우리 문학의 최첨단에서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의식을 벼리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
매 계절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발표한 신예들을 대상으로 한 서면 인터뷰로 채워지는 〈징후들〉에는 백수린과 이갑수 두 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겉으로는 그 문학 세계가 상이해 보이는 두 신예 작가들에게서 ‘불가능한 소통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과 ‘불량함을 무기로 삼은 작가의 패기와 진정성’이라는 두 역설이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게 되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줄 안다. 
〈이 작가〉 코너의 주인공은 최근 시집 『차가운 잠』을 출간한 시인 이근화다. “엉뚱한 발명”으로 쉽사리 도피하지 않고 글과 말을 통해, 그리고 상상력과 진실을 통해, 전투적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당차고, 그 전투가 매번 실패로 끝날 것을 알지만 바로 그 패전의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이 꿀처럼 맺힐 것이라는 비관적 낙관이 믿음직스럽다. 시인론은 신예 비평가 김영희 씨가 맡아 수고해주었다.
이번 호 〈비평 논문〉란에는 세 필자의 글을 실었다. 김주연의 연재비평 ‘古今共存’이 이번에는 김숨의 작품 세계에 이르렀다. 김숨의 소설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생명의 에너지’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그 에너지는 김숨 소설에 내내 감추어져 있다가 최근 전면화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혜경은 김민정과 김행숙의 시에서 찾아낸 ‘니체적 감각의 유쾌함’(「세계라는 허구의 영토」)도 함께 즐기면 좋을 듯싶다. 김다혜의 「미디어 팬 소설, 텍스트 밀렵과 브리콜라주의 세계」는 영미권의 경우 1980년대 중후반부터 이미 논의되기 시작한 인터넷 상 ‘팬 소설’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는 시사적인 글이다.
〈문학공간〉 코너에는 송종원, 이강진, 박상수, 양경언, 장철환, 신샛별, 심진경, 강정, 류준, 김대산, 박인성 등 총 11명의 필자가, 그리고 〈서평공간〉 코너에는 복도훈, 김현경, 박경신 등 3명의 필자가 각각 원고를 보내 주었다. 매 분기 한국에서 출간된 문학과 인문학 관련 도서들 중 정수들을 선별해냈다는 자부심은 감추고 싶지 않다.
반가운 소식으로 제12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안타깝게도 평론 부문에서는 올해도 수상자를 내지 못했지만, 대신 두 명의 시인과 한 명의 소설가를 문단에 내보낸다. 백은선, 장수진(시), 윤민우(소설)가 그들이다. 응모했던 모든 분들께는 감사와 위로와 격려를, 당선자들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심사하느라 수고한 모든 심사위원들께는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