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그들의 5년, 우리의 5년 

저는 우리가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가 방법을 선택할 자유를 줬는데도 왜 그것이 결론적으로 평가 방법의 획일화로 이어지는가, 이 점을 보아야 합니다. 일제고사를 포함해 평가라는 건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에서 작동하고, 그렇기에 우리의 자유나 선호 역시 이 체제에서 교육이 무엇인가에 의해 규정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교육은 일종의 욕망의 표상이고, 학교는 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개인들이 경쟁하는 치열한 전투의 장이죠.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자유가 선택의 획일화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박근혜의 교육 공약은 결국 이러한 체제 속에서 작동합니다. 예전처럼 위에서 강제하는 게 아니라 자유학기제나 일제고사를 부분적으로 폐지하는 것처럼 선택의 자유를 주는 식으로 방법을 전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는 자유로 보일지 모르지만 더욱 더 입시 경쟁과 진로 경쟁을 제도화함으로써 국가의 실질적인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봅니다.
- 본문 21쪽, 이계삼·이형빈·정용주·조영선, <특집 그들의 5년, 우리의 5년> 
“골방에서 나와 함께 떠들자” 가운데 

우리는 ‘안전할 자유’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폭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나를 지켜 주는 ‘수호 기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안전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가. 또한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폭력은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폭력인지 판단할 수 있는 힘과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어야 한다. 지금의 안전 담론과 그에 따른 실천들로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조차 성취하지 못한다. 수동성을 넘어 능동적인 행동을 중심으로 안전의 언어를 재구성해야 한다. ‘왜 이러세요’가 아니라 ‘아니오’를 말하고, 나를 향해 오는 매를 손으로 붙잡는 것처럼, 기다리고 신고하는 것만이 시민의 자발성의 전부가 아님을 드러내야 한다. 안전을 어떤 고정적인 상태가 아닌 ‘동사’로 이해하는 감수성이 싹틀 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 본문 56~57쪽, 한낱, <특집 그들의 5년, 우리의 5년> 
‘폭력의 반대말은 안전입니까?’ 가운데

그러니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에서는 모든 시민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와 관련하여, 생산에 대한 기여 정도나 생산주의적으로 평가된 능력과 무관하게 모두가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기 몫, 자기 지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적·사회적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그런 전제 위에서만 시민들은 사회적 배제나 모욕에 대한 불안과 공포 없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주체로서 시민적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가 바로 통상적인 인권 논의에서는 곧잘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되곤 하는 주거, 노동, 건강, 교육 등과 관련된 ‘사회권’에 대한 요구다. 우리의 복지 정치는 바로 이런 차원의 인권 정치여야 한다.
- 본문 72쪽, 장은주, <특집 그들의 5년, 우리의 5년> 
‘분배 정의를 넘어 ‘민주주의적 정의’로서 복지를 말하기’ 가운데


지난달 25일,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이른바 ‘멘붕’으로 표현되었던, 상식적인 사람들의 충격과 경악은 일상 앞에서 조금씩 무뎌져 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또 5년이 어서 지나가기를, 그때는 또 다른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기를 고대하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역할들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정부 5년은 한마디로 그런 기대로 희망을 계속 유예하면서 실천들을 거세해 온 시간이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박근혜 정부 5년을 보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5년은 무엇이고, 우리는 이 5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편집위원 좌담은 네 명의 편집위원이 모여 박근혜 정권에서 보낼 앞으로의 5년을 예상하고, 그 속에서 진보는, 그리고 우리 자신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복지와 민주주의, 안전 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보수 정치의 허위를 직시하고 폭로해야 한다는 소중한 문제의식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한낱은 대선 때부터 박근혜 정권이 강조해 온 ‘안전’이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킬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는 안전 담론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관리/통제하거나, 배제/추방하는 효과적인 기제가 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며, 우리가 나와 내 주변을 진정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떠한 조건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우리가 그리는 안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은주는 박근혜 정부 시대에 더 성숙해져야 할 우리의 복지 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진보 진영 역시 그동안 ‘능력주의’를 전제로 한 분배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분배 정의를 넘어 ‘민주주의적 정의’로서 복지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시민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물질적 삶에서 기본적인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대에 전교조와 교육운동 진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고 싶었으나 이번 호에선 다루지 못하였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이어질 호들에서 여기서 못 다 한 이야기들을 채워 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