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이 만들어 내는 진보적 담론의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 9호. 이번 호 특집편은 [‘폭력’을 다시 묻다]이다. 학교폭력 정국 이후 학교에서 강화되어 가고 있는 ‘안전’과 ‘비폭력’ 담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안전과 비폭력이라는 구호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들은 지금 학교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먼저 엄기호는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들 이후 학교가 안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그저 학생들의 ‘육체적 생명’만을 가둬 놓고 돌보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수용소’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저 살리는 데만 목적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수동성으로 지배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성장’을 위한 계기들을 만나기 어렵다. 엄기호는 이런 수용소를 넘어선 공간으로 ‘아고라’를 이야기한다.
여는 글
004 서로의 마음 보듬어 주기 ｜ 박민영
바라보다
008 “자, 이제 그만~” ｜ 최승훈 기자
특집 ‘폭력’을 다시 묻다
- 누가 진짜 일진인가 3
010 학교, 그저 살아 있게 하는 공간의 교육적 무능함 ｜ 엄기호
032 주먹은 울지 않는다 ｜ 채효정
068 폭력에 관한 질문은 올바른가? ｜ 하승우
대담
083 아래로부터 변화 없이 교육의 변화는 없다
- 취임 2주년을 맞은 곽노현 교육감을 만나다
｜ 곽노현, 정용주, 정리 최은정 기자, 사진 최승훈 기자
110 무지의 시스템 ｜ 공 현
118 Grow your English, Organically! ｜ 문수현
기획 대책 없는 학교폭력 대책
130 일제고사가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 진 냥
137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가 ｜ 조영선
교육농(農) 이야기
148 토종 씨앗의 자리 ｜ 권정생
156 지상의 작은 생명들과 우주와의 대화 ｜ 이은하
잉여의 교육학
168 김연아 좀 냅두세요 ｜ 석 영
한일 청년 관찰기
177 일본의 청년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 후쿠시마 미노리
에세이
193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 고민경
200 지난 학기 내가 겪은 몹쓸 일, 방과 후 학교 ｜ 조진희
211 자치 불능의 학교, 신민의 왕국을 만든다 ｜ 김수현
224 거리에서 희망을 찾다 ｜ 유호준
234 ‘청소년’과 ‘인문학’의 먼 거리, 토론으로 메우다 ｜ 안정선
리뷰
249 교사 불신 담론은 어떻게 강화되는가? ｜ 이형빈
- 《학교란 무엇인가 2》, 《최고의 교사》, 《나는 왜 교사인가》
261 두 얼굴을 가진 친절한 심리학 씨 이야기 ｜박진환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273 파국 앞에서 ｜ 변홍철
- 《장기 비상시대》
282 그들을 통해 ‘벗’의 앞으로를 고민하다 ｜김석규
- 《깨어나라! 협동조합》
윤지형이 만난 사람
290 가없는 ‘벌판’ 상상하며 길을 가다
- 행복한 시시포스 부산교육연구소 이광호
｜ 윤지형, 사진 최승훈 기자
<특집>
‘폭력’을 다시 묻다 - 누가 진짜 일진인가 3
<특집>
‘폭력’을 다시 묻다 - 누가 진짜 일진인가 3
‘안전’에 의해 지배되는 학교에서 교육은 이제 성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게 된다. 교육은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게 되었고, 학생들은 그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무엇을 하라는 ‘능동성’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수동성’이 교육을 작동시키는 더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학생들은 ‘성장’을 위한 계기들로부터 격리된 채 그저 학교 안에 ‘갇혀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학교는 거대한 수용소다.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훈육하고 폭력적으로 훈련시킨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만 수용소인 것이 아니다. 차라리 지금 학교가 수용소인 이유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학생들을 가둬 놓고’ 있기 때문이다. 갇혀 있는 학생들이나 가둬 놓고 있는 교육 당국이나 그 ‘갇혀 있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저 거기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것, 그러나 그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없어지는 순간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지기에 나갈 수 없다는 점에서 지금의 학교는 순수한 의미에서 ‘생명’만을 돌보고 있는 수용소이지 않는가?
- 본문 14쪽, 엄기호, <특집 ‘폭력’을 다시 묻다>
‘학교, 그저 살아 있게 하는 공간의 교육적 무능함’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학교는 또 어떤가? “폭력은 절대 쓰지 마라”,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비폭력 논리가 오히려 학생들이 폭력 상황에 적극 대응하고 개입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무력화시키고 오히려 갈등 상황과 폭력 상황을 외면하려 하는 수동적 태도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 전 어떤 중학교에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담임교사가 학생의 자살도 충격이지만 그 후 다른 학생들이 무더기로 보내 온 “누가 걔 때리는 거 봤어요” 하는 신고 문자들 때문에 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는 정말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위의 사건은 사적인 폭력을 야만적 행위로 생각하고 공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회, 국가의 폭력 독점이 개인들의 폭력성을 성공적으로 무력화시킨 사회에서 어떻게 ‘비폭력’이 ‘폭력’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저항의 수단으로서의 비폭력이 아니라 훈육과 통제를 통해 문화적 관습이자 생활 습관이 되어 버린 ‘비폭력’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일 수 있는지도 보여 준다.
- 본문 53~54쪽, 채효정, <특집 ‘폭력’을 다시 묻다> ‘주먹은 울지 않는다’ 가운데
이번 특집은 학교폭력 정국 이후 학교에서 강화되어 가고 있는 ‘안전’과 ‘비폭력’ 담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안전과 비폭력이라는 구호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들은 지금 학교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먼저 엄기호는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들 이후 학교가 안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그저 학생들의 ‘육체적 생명’만을 가둬 놓고 돌보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수용소’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저 살리는 데만 목적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수동성으로 지배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성장’을 위한 계기들을 만나기 어렵다. 엄기호는 이런 수용소를 넘어선 공간으로 ‘아고라’를 이야기한다.
채효정은 우리 사회가 ‘폭력’을 너무 단순하게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또한 ‘비폭력’을 너무 당연하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묻는다. 비폭력이 폭력과 맞서는 실천적 결단이 아니라 폭력을 회피하는 것으로 왜곡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제대로 된 성찰이 없는 비폭력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이 눈앞의 불의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신고’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폭력을 멈춰 세우기 위해선 우리가 잃어버린 ‘실천적 행위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승우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모든 갈등과 불화마저 없애려 하는 현재의 학교를 비판한다.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한 있을 수밖에 없는 불화를 제거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생명력과 평화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교육이 갈등과 불화를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연습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우리가 더 ‘소란스러운’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스쿨 폴리스와 CCTV, 그리고 각종 법적인 처벌들이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힘을 잃어 가는 건 실은 폭력이 아니라 갈등과 불화,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닐까.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학교를 만들 것을 말하는 세 글을 통해 학생들이 불의와 폭력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 지금 우리 교육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을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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