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한 명 한 명에게 정치적 결단과 결정이 요구되는 시기를 살며 민감한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동시에 독보적인 미학적 성과를 보여준 에른스트 윙거는 독일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윙거는 세계적 명성에 있어서도 이미 오래 전에 20세기 독일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혔지만,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출간되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땅을 일구며 영혼과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곳, 마리나. '나'와 오토 형제는 이 목가적인 땅의 대리석 절벽에서 식물계를 연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산림감독원장과 그가 이끄는 마우레타니아 인들의 횡포로 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은 피로 얼룩지게 된다. 

1939년에 발표한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나치 정권이 주도한 폭력 시대의 역사적 반성을 담았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윙거는 '산림감독원장'이 히틀러 한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독재자의 한 전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저급한 것들이 우리에게 권력을 휘두르던 
시간에 대해서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폭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그리고 영혼을 가진 자들의 저항기
아직까지 국내에 단 한 작품도 번역 소개된 바 없는 
독일문학 최후의 거장 에른스트 윙거의 대표작!

전쟁을 찬미하고 나치 집권에 일조하는 글을 썼다고 비난받는 동시에, 나치에 비판적인 작가로 간주되기도 하는 에른스트 윙거(1885~1998)의 대표작 『대리석 절벽 위에서』(대산세계문학총서121)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지식인 한 명 한 명에게 정치적 결단과 결정이 요구되는 시기를 살며 민감한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동시에 독보적인 미학적 성과를 보여준 에른스트 윙거는 독일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윙거는 세계적 명성에 있어서도 이미 오래 전에 20세기 독일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혔지만(이 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주요 작품은 펭귄 클래식 시리즈로 영역 출간되어 오늘날까지도 영미권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출간되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그것은 니체의 영향을 받은 초기 윙거의 반민주주의적 사상(파시즘에 가까운 것으로 의심된)으로 인해 독일에서도 그의 문학적 가치가 다소 늦게 인정된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윙거 정도의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20세기 세계 문학 거장이 국내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케이스는 앞으로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윙거는 국내에 미지로 남아 있는 최후의 20세기 거장이었다고 할 만하다.
땅을 일구며 영혼과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곳, 마리나. ‘나’와 오토 형제는 이 목가적인 땅의 대리석 절벽에서 식물계를 연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산림감독원장과 그가 이끄는 마우레타니아 인들의 횡포로 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은 피로 얼룩지게 된다. 1939년에 발표한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나치 정권이 주도한 폭력 시대의 역사적 반성을 담았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윙거는 ‘산림감독원장’이 히틀러 한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독재자의 한 전형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추정할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무법의 독재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나치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한정된다면,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에도 양상을 달리한 채 폭력과 압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폭력으로 얼룩진 인간 역사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언제 어디서든 당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문제적 작가 에른스트 윙거
에른스트 윙거는 188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1998년에 만 103세로 작고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 모두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군인으로서 참전하고 훈장까지 받은 에른스트 윙거는―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보통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에 속하면서도 나치의 전체주의에는 반대했다고 평가받는다. 나치 정권은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윙거를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적극 협조하지 않았으며, 2차대전 이후에는 연합국이 탈나치화 정책의 일환으로 그에게 요구한 설문지 작성을 거부해, 전쟁 말기에는 나치에 의해, 종전 직후에는 영국 점령군에 의해 잠시 작품 출판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행적을 볼 때, 성급하게 그를 하나의 정치적 성향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의 비판자들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발표된 전쟁, 국수주의, 유대인에 관한 윙거의 글이 간접적으로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다고 주장했지만,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전후 비평가들과 독자들에게 나치의 전체주의 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전쟁을 일으켜 평화로운 문명을 위협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파괴하는 ‘산림감독원장’과 그의 무리들이 히틀러와 나치 세력을 닮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3년 『슈피겔』 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윙거 자신은 『대리석 절벽 위에서』의 정치적인 배경을 특정 시대에 한정하거나 특정한 정권을 정치적으로 비판한 작품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한다. 
아직도 학자 및 독자들 사이에는 윙거가 전쟁을 찬양했는지 반전작가였는지, 혹은 독재정, 특히 히틀러 정권에 항거했는지 찬성했는지 등의 논쟁이 존재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문학적 가치를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윙거가 각별히 고르고 다듬어 쓴 문체도 특별하거니와 문학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와 문학작품 내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을 묘하게 사로잡는다. 1950년대부터는 독일 초중고 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작가로 꼽히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인간 역사의 축소판
이 짧은 장편 소설은 영혼의 힘과 자연의 신비를 따르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우리’(화자인 나와, 함께 식물계를 연구하는 오토 형제)가 잔인한 독재자 산림감독원장 무리의 횡포에 맞서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장소 혹은 인물 들이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과 뚜렷한 대응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먼저 ‘나’와 ‘오토 형제’가 기거하는 운향초 암자는 윙거가 동생 프리드리히 게오르크와 2차대전 직전에 살았던 위버링겐을 그린 것이며, 마리나의 풍경은 보덴 호수 지역을 닮았다고 한다. 한편 용기와 호기를 갖추었으나 결국은 잔인한 폭력 위에 권력을 구축하는 산림감독원장은 히틀러나 스탈린, 혹은 헤르만 괴링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작품이 출간되자 나치 정권하에서 문화를 통제하던 이들은 즉시 윙거를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낼 것을 건의했으나 히틀러가 직접 말렸다는 에피소드도 전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산림감독원장은 굳이 히틀러나 나치 정권의 권력자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한 전형이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그를 경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와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옛 애주가들처럼 일종의 붉고 뜨거운 취기로 젖어 있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안에는 모략과 불굴의 표정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건 막강한 통치자의 표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림감독원장을 따르는 마우레타이아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가슴속에 살아 있던 독재정권을 부활시킬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보고, 폭력을 바탕으로 무법의 독재정을 세운다. 역사적으로 공포는 언제나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민중을 통제하며 마비시키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산림감독원장은 “그 어떤 저항이라도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목표하에, 처음에는 공포를 소량으로 나누어 흘려보냈고 그 용량을 점차로 늘려”나간다. 
또한 독재자 ‘산림감독원장’과 그 무리들의 비열함과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간결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를 짓밟는 행위를 기쁘게 행하는 인간의 극단적인 악마적 본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산림감독원장’이 한 정치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듯, 이 작품에 묘사된 야만의 시대 또한 어느 한 시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윙거의 비판자들이 비난하는 부분인) 윙거가 호의적으로 묘사하는 용감하고 호방한 전사의 덕과 잔인함과 폭력성이라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부분 사이의 경계에서 종종 이기적이고 나약한 판단을 하고 마는, 폭력으로 얼룩진 인간 역사의 축소판이자,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경고가 될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권력에 맞서 작용해왔던 것이다
윙거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그의 미(美)에 대한 관념이다. 윙거는 독재자를 폭력과 학살을 자행하고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윤리적 악인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혐오하고 파괴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자는 그와 동시에 아름다운 세상을 혐오하는 자, 아름다운 문화를 파괴하거나 변색시키고 아름다움 그 자체를 혐오하는 자로 그려진다. 윙거에게 있어 도덕적 규범은 미적 혹은 미학적 규범과 교감한다고 할 수 있다.
윙거에게 “운율이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고,” “땅이 주는 비옥함과 넉넉함으로 인해 어떤 정권이든 일단 폭정을 시작했다가도 곧 그 의지가 부드럽게 되돌아”갈 만큼 “아름다움은 권력에 맞서 작용해왔”으며, “이 땅의 아름다움은 거의 고통과도 같은 느낌으로 마음속 깊은 곳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그러나 산림감독원장은 “농장들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시인의 오두막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저급한 심장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타오르는 증오는 깊었다.”
그리고 윙거의 이러한 관점은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윙거는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대화를 나누는 일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단어를 매우 다듬어 선별한 시적인 문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는 미적 묘사가 서사적 구조 이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길지 않은 소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몇 개만 선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