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특강-박원순 시장, 서울대 가다

대학생이 묻고, 원순씨가 답하다

지난 4월 20일 금요일 저녁,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학생들의 만남이 있었다. 서점 ‘그날이오면’의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1부 강연’과 ‘2부 대학생이 묻고 원순씨가 답하다’로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현장에는 관악구의 유기홍, 이상규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이 시대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보내는 박 시장의 충고와 격려는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감동적이었다. 지금부터 ‘원순씨’와 대학생들의 뜨거웠던 미팅 현장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일시 4월 20일(금) 오후 6시 30분

장소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

주최 그날이오면 서점

후원 서울대학교 노동조합, 민주노총 서울대학교 지부, 통합과학연구회, 그날이오면 학회,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문화체육관광부

|원고 정리 및 교정: 편집부(조랑)

1부 강연

“역사에는 절대 공짜가 없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날이오면’(주최) 서점주인 때문에 왔습니다. 총장님이 오라고 하셨으면 아마 몇 달 더 걸렸을 겁니다. 관악구청에서부터 캠퍼스로 들어오면서 보니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어있던데요. 1975년 그날도 이렇게 피어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신입생이었습니다. 머리는 이만큼 길었습니다. 예수 같다고들 그랬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타임』지를 옆에 끼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고, 김일철 교수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강의를 위해 중앙도서관 6층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니까, 아니 학생들은 한 200~300명인데 경찰이 한 1000명 들어와 있었던 것 같아요. 짓밟고 찍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동시대 학생으로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서 함께 데모를 했습니다. 교문까지 진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경찰이 1000명이었는데, 한 5000명은 더 되는 경찰이 갑자기 쳐들어오니까 다들 신발도 벗겨진 채 막 도망을 가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먼저 잡혔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달리기 연습이라도 좀 해두는 건데 말이죠.

남부경찰서에서 잡혀가서 한 달 있다가 영등포구치소로 끌려갔습니다. 1975년 5월 21일, 그날 이화여대생하고 미팅 약속이 있었거든요. 사실 그럴 줄 알았으면 데모도 안 나갔을 텐데……. 의협심에 어쩔 수 없어 그랬습니다. 비록 타의에 의해 감옥에 갔습니다만, 가서 보니까 정말 감옥이 좋더라고요. 완벽하게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도망갈까 봐 불도 안 꺼요. 저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소년수방에 갔습니다. 소매치기, 강도살인, ‘강’자 돌림의 범죄들은 주로 청소년들이 저지릅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강도살인범이 제 옆에 누워 잠을 잤었어요. 저는 잠이 확 깼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옆에 가서 자고 그랬는데, 지내다 보면서 그 아이들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결코 그렇게 악질적인 죄인들이 아닙니다. 진짜 죄인들은 절대 감옥에 안 갑니다. 여러분 아시죠, 어떤 사람들인지? 저는 오히려 사회구조적인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4개원 있다가 나왔습니다만, 그곳에 있으면서 읽었던 책들이 아직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마르쿠제의 두꺼운 책 『이성과 혁명』을 RMx까지 다 읽었구요. 그때 읽었던 것은 다 새록새록 기억이 나거든요. 여러분 감옥, 꼭 한번 가보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여러분들한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도대체 ‘그날이오면’이런 사회과학 서점 하나 갖지 못하는 서울대학교라면 여러분들에게 희망이 없고, 서울에 희망이 없고,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 비록 감옥도 가고 제적도 당하고 고난을 받았지만 여러분의 선배들은 감옥 갈 걸 뻔히 알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뿐입니까? 저는 70년대 학번이잖아요, 80년대 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중앙도서관 앞에서 분신하기도 하고 의문사를 당하기도 하고, 여러분 오늘날 이 자유를 누리기까지 결코 역사에 공짜는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여러분이 좀 더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권이 이만큼 증진됐고, 사회가 이만큼 진보했습니다. 역사에는 절대 공짜가 없습니다. 제가 미국 국무성 앞에 가봤더니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 이런 글을 써놨더라구요.

여러분 이번 정부 들어와서 인권이 굉장히 악화됐죠? 저도 그 희생자의 한 사람입니다. 제가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를 만들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또 상당 부분 바꾸었죠. 그런데 왜 느닷없이 제가 서울시장 선거를 나왔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께서 임용 요청을 해주셨습니다. 왜 죄 없는 저를 사찰하고 가는 곳마다 정부인사가 와 있고 방송사마다 다 취재해놓고 방송에 안 나오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부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사회는 거꾸로 돌아가고, 또 그것이 계속된다고 하면 역사의 퇴행을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렇게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희생만 하는 것일까요? 유기홍, 이상규 의원 두 분도 그때 다들 데모하셨죠? 예, 아주 큰 소리로 ‘예’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국회의원들 중에 40대는 다들 젊은 시절에 감옥 한 번쯤은 다 가본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무사히 졸업을 했다면 아마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아주 충직한 검사로, 뭐 검사장 정도 하다가 나와서 혼자 돈 벌어먹고 서울시내 강남에 큰 빌딩 하나 소유하고 외국에 애들 다 보내놓고 별장도 하나 있고 그렇게 지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배나 두들기면서 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못 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이 뭐 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잡혀가고 때로는 억울한 사형판결을 받아서 죽어가고 있을 때, 서울법대생들 뭐했습니까?

'육법당‘이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육사와 서울법대가 함께 힘을 합쳐서 군사독재의 기둥이 됐었잖아요. 서울대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만 있습니까? 아니면 수치와 굴욕의 역사만 있습니까? 한국현대사의 많은 비극들을 누가 만들어냈습니까, 여러분? 역사의 바른편에 서 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감옥에 보내고 처형했습니까? 여러분의 선배들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나요? 지금은 훨씬 더 힘든 복잡한 구조로 세상은 여전히 약자는 힘들고 부자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남용하는 그런 시대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가 저절로 일어났습니까? 도시재개발을 했을 때 그곳의 80프로는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데 쫓겨나야 하는, 자기가 평생을 뿌리박고 산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쫓겨는 이런 법률 체계와, 그런 것을 정당하다고 지켜주는 국회와 사법부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누가 많이 가 있습니까? 그 고위관료 그리고 사법부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학교 출신입니까 여러분?

저는 감옥에 다녀온 것을 농담이 아니라 너무나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감옥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운동권 선배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본의 아니게 말이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날 저녁에 미팅 약속이 있었는데……. 그렇지만 제가 그 일을 당하면서 제가 어느 샌가 저도 모르게 역사의 중심에 서 있게 됐더라구요. 그리고 역사의 요구, 시대적 요구, 그것으로부터 저는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스물일곱에 검사 임용이 됐으니까 그때 저 시골로 경찰서 유치장 감찰을 갔더니 경찰서장이 문앞까지 나와서 큰절을 하면서 ‘영감님’ 그러더라고요. 그런 권력의 맛에 제가 만약 빠져들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죠. 역사의 바른편에 선다고 하는 의식이 없었겠죠. 그래서 사표 내고 바로 변호사 하고, 또 변호사 할 때 저도 계속했으면 이런 건물 하나 지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거 다 팔아먹고, 결국 빚만 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 같습니다.

여러분, 제가 ‘협찬인생’이었잖아요. ‘아름다운 재단’이 1년에 100억 원 이상 모아주고, ‘아름다운 가게’ 헌 물건을 전국에 걸쳐 기부해주시고, 그리고 안철수 씨도 저에게 잘해주시고 민주당도 저를 위해 잘해주시고, 민주노동당도 협찬해주시고, 이상규 의원님이 그 당시에 유세본부장님이셨습니다. 아이 안고 유세 다니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그 협찬은요, 자기를 버릴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철학을 얻게 됐습니다. 작게 버리면 작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큰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습니다. 인생에서 자신을 다 버려버리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여러분, 작은 인생의 전략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작은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사인할 때 꼭 써주는 말이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입니다. 비록 이 고통스럽고 또 남들이 비난하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꿈이 있는 삶은 나중에 뭔가 이루어냅니다.

여러분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여러분이 원하는 좋은 직장, 예컨대 한검사가 됐다, 삼성전자 취직됐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가장 빛나는 곳으로 갑니까? 부속품 같은 인생을 사실 겁니까? 물론 그런 삶도 소중합니다. 그런 삶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고요, 그런 경우라도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굉장치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서울대학교에서 4년 있는 동안 학점이 중요하지 않스비낟. 서울대학교 나오지 않고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얻고 어마어마한 인생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나오고도 나쁜 일을 세상 돌아가며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야말로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더 큰 부자, 더 큰 권력자, 더 큰 세상의 꿈을 꾸는 사람은 작은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 버리면 더 좋습니다. 서울대학교까지 나오고 다 버려버리면 사람들은 더 존경을 하게 돼 있죠. 그런데 뭐 존경을 받기 위해서 희생을 합니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희생하는 건 아니죠.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한말에 일본의 대한제국이 복속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있죠. 맞춰보세요. ……금방 나오네요. 매천 황현 선생이 목숨을 끊으면서 이런 시를 하나 남겼습니다. '절명시‘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 데요. “가을밤 등불 아래 책을 펴고 앉았으니 글 배운 자 노릇하기 어려워…” 이런 시가 있거든요.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나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절명시(絶命詩 )」 매천 황현

글 배운 자의 책임이라는 것은 무한대입니다. 조선시대를 보십시오. 공직에 한 번도 나아가서 벼슬을 한 적이 없지만 그 사회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진 지식인들이 저 하늘의 ant 별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목숨을 바쳐서, 그 유생들이 도대체 무슨 전쟁을 했겠어요, 무슨 싸울을 할 줄 알았겠어요. 그렇지만 기꺼이 이슬같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조선의 역사 또 대한민국의 역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저는 서울대생 여러분들이,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거기다가 이런 역사적 사명감만 가지신다면 정말 서울대학교도 빛나고 여러분의 삶도 빛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서울시장을 맡으면서 무슨 욕심이 있었겠습니까? 서울시장 못지않은 자리들을 많이 제안 받았고 또 취임할 가능성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공직이 아니라, 공직이 아니어도 공직 못지않은 일들을 제 스스로 제가 만들어나가고 제가 꾸려 가는 이런 조직들을 끝없이 만들고, 서울시장보다 더 높은 자리, 더 빛나는 자리를 이미 많이 거쳤습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얼마나 빛나는 자리입니까. 시민들이 이익이 대변자잖아요. 그때 미국의 유명한 잡지에 ‘People's Advocate'이라는 한 페이지짜리 제 기사가 났었습니다. 너무나 영광스런 이름이잖아요. 국민의 대변자였잖아요.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변자일지는 몰라도, 저는 정신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대변자였습니다. 늘 약자 쪽에 섰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를 하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거의 월급도 없이 일했습니다. 어디서 나오는 돈이 생기면 오히려 거기다 갖다 바쳤죠. 집안 내팽겨 쳤습니다. 절대 천국 못 갑니다. 그보다 더 빛나는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서울시장 자리 제가 뭐가 그렇게 탐탁했겠습니까. 여기 눌러앉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다만 이왕 맡았으니까 정말 서울시민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서운 게 없습니다. 뭐가 두렵겠습니까.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서울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한 일이라면 저는 바로 결단할 것입니다. 물론 그 일들 중에는 때때로 굉장히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검토해야 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참 억울한 일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정말 이러이러한 마름으로 하는데, 언론에서는 이상하게 보도하는데……. 여러분 다 알고 계시죠? 그런데 모르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시장실에 CCTV를 설치해 가지고 24시간을 다 보여주자.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와 어떤 얘기를 하고 이런 것들을, 어때요? 근데 그러면 사람들이 안 올 것 같아서요…….

여러분, 엘리 위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태인인데요, 나치 치하 강제수용소에 있다가 생존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서 노벨문학상이 아니라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어느 자리에서 했던 말이 이런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 저는 행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것이 이념이나 이런 차원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바른 길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히 어느 편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죠. 저는 우리 시대야말로 진정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과 상생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에 굉장히 많이 와 있죠? 전국에 100만이 넘어섰구요, 그 중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자를 뺏어간다고 질투하는 우리 국민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미국이라는 나라 가만히 한번 보시면요, 정말 엄청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나라가 유지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데 그게 바로 힘입니다. 굉장히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양하거든요. 능 새로운 이민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존 F. 케네디가 쓴 책 중에 『Nation of Immigrants』, '이민자의 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민자의 나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물론 그것도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의한 표현입니다. 원래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그렇지만 어쨌든 끊임없이 새롭게 상륙하는 이민자들 때문에 활기차고 다양성이 주어지고 새로운 흐름이 주어지는 것이죠. 만약에 우리가 똑같은 생각, 독같은 얼굴만 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절망입니다. 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성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발전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너는 우리 사회가 서로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서로가 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다른 것이 귀하게 여겨지고 그것 때문에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저를 찍지 않은 사람도 상당히 있죠. 그런데 그분들과 저는 기꺼이 대화하고 논의할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보면서 참 감동을 받았는데요. 늘 변경(邊境)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합니다. 그러니까 한가운데 있는, 늘 중심에 있는 것은 퇴화하거든요. 그런데 변경에서는 원시력과 생명력이 살아있거든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너무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서울이 모든 것의 중심을 차지해버리기 때문에 변경에서 아주 생생한 새로운 문명이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지요. 그래서 저는 비록 서울시장이지만, 지방도 하나다. 서로가 다 한몸으로 얽혀 있는데 도대체 서로 싸우고 갈등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농촌과 도시가 다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도 또 하나 제가 오늘 여러분들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젊음의 특권이 뭡니까?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이에 누구는 어느 회사 들어갔는데, 누구는 어느 언론사 합격했는데, 여러분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스트레스 확 다 날려 보내세요. 인생이란 것에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습니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잖아요. 마라톤입니다. 100미터 앞으로 막 뛰어나갔던 그 사람이 마라톤에서 1등 합니까? 마지막 단계가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그런 거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여러분의 근본에 충실하십시오.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꿈꾸는 인간, 도전하는 인간, 그것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만약에 검찰에 그대로 있었다면 결국 핏빛 경쟁 속에서, 그래도 저같이 부지런했으면 아마 저도 승자 중에 한 명이긴 했을 거예요. 완전 깔때기네요. 하하하. 그런데 저는 그런 거 다 버렸잖아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갔잖아요. 시민운동. 그것도 계속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잖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노력해도 그냥, 제가 뭐 다니면서 말뚝만 박으면 제 영토로 변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우리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많이 널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읽어보셨나요? 네 제가 또 책 선전까지 합니다. 여러분 우리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남들 다 가는 그런 일에 정말 바보같이 피 흘리고 경쟁합니까? 경쟁 없이도 정말 시대를 택하고 여러분의 삶도 빛낼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전과 창조와 혁신의 삶을 여러분들이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요.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저는 다릅니다. 왜냐면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책 한 줄을 읽고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달라지거든요. 달라지겠죠? 아마 서울대가 명실상부한 명문이 되는……. 오늘 아주 전환기적인 날입니다. 저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2부 대학생이 묻고 원순씨가 답하다

“새로운 황무지로 가세요”

(2시간가량 이어진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가운데 몇 가지 문답만 소개한다.)

질문1. 원순씨에게 강용석이란?

(이 질문이 스크린에 뜨자마자 현장은 웃음으로 초토화됐다.)

원순씨: 굉장히 고마운 존재죠. 사실 제가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막 떠들다 혼자서 나가 떨어졌지요. 그래서 저보고 아주 스나이퍼라고, 그런데 저는 뭐 잘못한 거 없어요. 아니라고 그러는데 계속 혼자 떠들다가…….

혼자 떠들다가 혼자 나가 지쳐 떨어졌다. 답변이 길 거라고 생각하고 첫 질문으로 드렸었는데…네, 사실은 이런 고초를 겪게 되셨던 이유가 박원순 시장님께서 현실정치로 입문하시면서 여러 논란에 휩싸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실정치에 대한 얘기도 당연히 이번 대담에서 할 건데, 그 이전에 시장에 당선되기 이전까지 박원순 시장님이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하셨던 영역인 시민사회 혹은 시민운동에 대한 질문부터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2. 이번 19대 총선 과정에서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해오시던 수많은 분들이 현실정치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이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텐데요. 시민운동 경험을 살린 제도권 정치 참여,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길을 걷게 되면 정작 시민운동은 누가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하는지, 질문 주신 분의 워딩을 그대로 옮겨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가뜩이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질책을 들어온 것이 현실인데 이렇게 돼버리면 정말 소는 누가 키우냐? 이게 질문이었습니다.

원순씨: 제가 희망제작소를 했기 때문에 소는 누가 키우냐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소고기파동 때 희망제작소가 안국동 로터리에 있었는데요. 시위대가 다 그쪽으로 지나가면서 ‘희망제작소’니까 ‘소(글자)’를 자꾸 떼어 가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나중에 ‘소’자 대신에 진짜 '소(그림)'를 그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우입니다’라고 써놓았던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 얘기가 일면 타당하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운동가들의 위기의식은 말하자면 시민운동을 할 수 있는 토대조차도 다 깨트려버리는 이런 정도 아래서 시민운동이 본래 가져야 될 초정차성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결론에 사람들이 도달을 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온 것을 계기로 해서 이번에 시민사회 출신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열대여섯 명이 당선된 것 같아요. 그런 우려가 충분히 나올 만하고요. 그런데 저는 늘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과제가 있고,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여러분들한테 권유했던 새로운 황무지로 가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시민사회입니다. 그곳은 정말 빛도 이름도 없는 길인데요, 그렇지만 가장 보람 있는 길이라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아마 오늘 지망자가 굉장히 많이 나오실 것 같아요. 그렇죠?

질문3. 서울시장을 하시면서 이것만은 꼭 바꾸고 싶다. 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원순씨: 저는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시장 재임 기간 중에 어떤 시장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 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거든요. 아무것도 특별한 것을 안 한 시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왜냐면 그전에 다들 뭔가를 남기려고 하다가 무리하게 됐기 때문에 저는 사실 이분들이 해놓은 거 치우기도 바쁘잖아요. 좋은 일들도 많이 하셨조. 저는 그런 일들을 정말 실 속 있게 제대로 되도록……여러분 제가 ‘꼼꼼원순’인 거 아시죠? 저 A형입니다. 그래서 아주 꼼꼼하게 챙깁니다. 하루에도 지시사항이 수십 개나 내려갑니다. 그래서 요란하게 뭘 하기보다 서울시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일을 제대로 하고 싶은데요. 오늘도 시의회 질문을 받으면서 동시에 아이디어를 계속 저 나름대로 만들어왔습니다. 예컨대 오늘 어떤 의원님 한 분이 자전거에 관해서 질문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시간 동안 계속 메모하면서 자전거에 관한 총체적 마스터플랜을 만들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자전거 정책이 달라질 겁니다. 현재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이 겨우 3.5%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네덜란드나 이런 나라에 가보시면요, 자전거로 전국이 아주 거미줄처럼 돼 있습니다. 그것도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아주 아름다운 환경을 배경으로 말이죠. 20%, 많은 데는 30%까지, 그러니까 에너지를 그만큼 덜 낭비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몸이 좋아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딱 내세우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완전히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에요. 첫째, 예방 행정입니다. 바로 이게 예방 행정이거든요. 저는 스포츠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 생활체육이 중요하냐?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거거든요, 의료비를 줄일 수 있거든요. 지금 의료비에 투자가 서울시만 해도 몇 조원의 의료비가 투자되는데, 여기에 딱 10%만 이런 스포츠가 DP방 운동에 쓴다면 훨씬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행정의 틀을 바꿔내는 여러 가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공유도시라는 것을 제가 주장하고 있거든요. 사실은 시립병원이 서울 시내에 14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병원에서 기자재를 잘못 산 거예요. 보라매병원은 서울대병원이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도 이번에 기자재를 잘못 산 게 많아요. 몇 사람이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수요조사도 제대로 안 한 채 이 기자재를 샀어요. 그래서 뜯지도 않은 상태로 창고에서 놀고 있어요. 그런데 또 다른 시립병원에서는 그걸 또 따로 빌려서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유의 시스템을 만들면요, 많은 것이 절약되구요, 활용도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서울 시내에 있는 비어 있는 공간을 모두 조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7시부터 9시까지 어떤 모임을 한다, 그러면 온라인으로 여러분의 구에 들어가서 찾아보면 공간이 쫘악 나올 겁니다. 혁명이죠, 여러분?

질문4. 대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건 꼭 해보고 싶다. 이건 해보지 않아서 후회된다. 하는 것이 있으신지?

원순씨: 꼭 감옥에 가십시오, 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요샌 감옥에 가는 것도 쉽지 않죠. 저는 여러분들이 역사의 강물의 변두리에 계시지 말고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적 안일이나 삶을 사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결국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정치적이라는 말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서 동시대 안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혼자 살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혼자 살 수 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들이 역사 현장 속에 있으면 훨씬 더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다음에 하나 더 보태자면, 언어는 좀 많이 해두십시오. 제가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비행기로 한 세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언어는 다 공부했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 3시간 타고 가면 어디를 갈 수 있죠?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어 해야죠. 동경, 일본어해야죠. 북경, 두 시간이면 가죠? 중국어 해야죠. 세 시간이면 필리핀 마닐라까지 갑니다. 타갈로그어까지 해야겠네요. 하하하.

네덜란드에 가니까요,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어떤 표시를 붙여놨더라구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언어의 수를 표시해놓은 건데 보통 3개에서 많으면 6개까지 붙어있어요. 언어는 국력입니다. 개인을 새로운 문명과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사실 저도 중국어 잠깐 듣다가 말았는데요.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제가 스탠포드대학 가서 강의할 때 중국어를 새롭게 공부했었어요. 그때가 벌써 쉰 몇 살 때잖아요. 중국어책 상하권을 다 떼고 시험도 봤는데, 책을 다 덮고 나니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짜이찌엔 이거 외에는……하하.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의 이 총명한 머리가 있을 때 공부해두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사법연구원 다닐 때 거의 두 시간씩 자며 잠결에 일본어를 공부했었는데 오십이 넘는데도 이십대 때 공부한 게 다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 연애는 꼭 하십시오. 그게 인간을 굉장히 성숙시키는 것 같아요. 뭘 하라는 말 너무 많이 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이 두가지만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