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계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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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본부가 본관점거를 진행한 학생 3인에게 징계를 내린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무기정학 수준의 중징계라 한다. 본관점거 해제 이후 두 달이 흘렀다. 그 동안 본부의 교수님들은 “누구”에게 징계를 줄 것인지, “얼마나” 징계를 줄 것인지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셨나보다. 저들이 긴 고뇌 끝에 만든 작품을 지금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 냉소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다.

아크로에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고 28일 동안 학생들의 점거가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서울대 법인화라는 당면한 이슈를 넘어 본부에 전하려했던 메시지는 ‘소통’, ‘대화’ 그리고 ‘민주주의’였다. 본부와 본부의 ‘높으신’ 교수님들이 우리의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들었으리란 약간의 희망은 역시나도 헛된 것이었나 보다. 대학본부의 권한이 제한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대국회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한 학생들과, 정해진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능력도 없는 본부의 교수님들. 법인화 과정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자는 우리와, 거대여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법안도 법안이라며 묵묵히 따르기만 하는 당신들. 지금의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고 어떤 행동이 옳은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저항은 정당하다. 법인화라는 서울대 개교 이래 최대의 변화다. 이 변화의 결정에 과정에 그리고 내용에 우리들의 의견이 설 곳은 없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담아야 한다는 절차와 규정이 없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당신들의 알량한 정의(definition)보다, 대학의 변화는 대학 구성원들의 합의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우리의 정의는 훨씬 더 우월하다. 그리고 정의(justice)에 부합한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진리는 나의 빛’이란 대학의 가르침을 따라, 민주주의의 정의-definition이자 justice-에 따라 비상총회를 실시했고 본관을 점거하였다.

형식과 규정의 기계적 적용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실천적으로 민주주의를 체득했고 구성했고 적용했다. 그렇기에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실천은, 무엇보다 우리의 저항은 정당하다. 따라서 이 순간 우리는 당신들의 징계 조치를 권위주의적이고 反민주적인 전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중대한 사안을 날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정당한 행동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리는 대학본부는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본부에게 고한다

기사에 언급된 본부 고위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죄목’은 이러하다.

학생 징계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2조 3항, “학사 업무 수행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주는 행위를 한 자”

학생 징계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2조 4항, “학교건물에 무단 침입하거나 학교건물을 점거하는 행위를 한 자”

우리가 받은 징계위원회 출석통지서에는 우리의 ‘죄목’을 이렇게 적고 있다.

학칙 제92조 1항, “학생은 학칙 등 제규정을 준수하여야 하며, 수업⋅연구 등 학교의 기본 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개인 또는 집단적 행위와 교육목적에 위배되는 활동을 할 수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학본부의 이러한 행동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학생 자치란 대학본부의 구속을 받지 않는, 교수들의 지시를 받지 않는 자기통치로서의 교육 활동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시민교육의 장이다. 활자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민주주의를 느끼고 만드는 자유와 진리의 현장이다. 민주주의의 학습과 실천으로서의 학생들의 점거는 당신들이 만들어낸 유치한 활자로 재단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죄목’이 ‘구성원의 의견수렴 없이 날치기 통과된 법인화를 저지하려했다는 것’이라면 이는 명백한 자유의 억압이요 反민주적 역행이다.

따라서 우리 3인은 당신들의 세계에서 진행되는 ‘민주’란 이름의 권위주의인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당신들이 출석통지서에 적었듯 “진술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징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끼리 만들어낸 징계위원회 자체를 우리가 승인한 바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순간 우리 3인은 더 이상 ‘징계대상자’가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우리는 민중해방의 불꽃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당당한 회원이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원칙에 의하여 점거를 진행하였고, 우리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원칙이 당신들의 그것보다 우월하고 정의로운 것임을 누누이 밝혀왔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들에 의해 우리의 권리를 침해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오로지 우리는 당신들의 유치하고 권위적인 징계 방침에 맞선 또 다른 저항을 시작할 따름이다.

학우들에게 제안한다

학생의 대학의 3주체 중 하나라는 명제는, 슬프게도 우리 학생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명제이다. 대학본부도 사회도 어디서도 우리의 당연한 주체로서의 권리와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왜 아크로에 한날한시에 모여 비상총회를 개최하였으며, 무더운 여름을 본관 복도에서 보냈는가. 주체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왜 오연천 총장의 ‘경륜’ 발언에 분노하였는가. 주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지금 대학본부는 또다시 자신들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무슨 자격으로 대학본부가 학생회 활동을 평가하고 징계할 수 있단 말인가. 학생이 대학의 주체라면, 대학을 지배하는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집단이라면 우리의 활동과 우리의 주장을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우리, 즉 학생에게 속한다.

민주적 권리의 확대, 주체로서의 자기통치는 투쟁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구현될 수 있었다. 민중해방의 불꽃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수 십 년 간 수많은 선배들의 부단한 투쟁 과정을 통해 건설되었고 유지되어왔다. 대학본부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학생들의 민주적인 조직을 지켜내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미약하나마 지금의 권리를 확보하였다. 법인화란 이름으로, 징계라는 이름으로 역사가 만들어온 학생들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간단하다. 대학의 당당한 주인으로 끊임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뿐이다.

8월 22일 그리고 23일, 학생잔디 위에서 법인화 캠프가 열린다. 전학대회에 모였던 모든 대의원들이 결의한 9월의 대국회 법인화법 폐기 투쟁을 선포하는 축제의 자리다. 이 자리에서부터 지금껏 만들었던 그 어떤 저항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투쟁을 만들어나가자. 주체로서의 우리들의 권리는 징계를 받느냐 아니냐를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본부의 어떠한 권위적인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학의 주인으로서의 활동을 만들어나가는 것. 본부의 유치하고 반지성적인 행보에 굴하지 않고 우리가 견지해야 할 지성인의 성숙한 자세이다. 8월 22/23일 법인화 캠프에서부터, 우리의 저항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우리가 저들보다 더 민주적이고 저들보다 더 주인다움을 당당하게 발화하자.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비상총회의 성사 이후, 서울대 학생들은 전국의 시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후원 물품이 쌓여만 갔고, 매일같이 열린 촛불문화제를 방문하는 발길 또한 끊이지 않았다. 본부스탁은 수많은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어울린 거대한 축제였다. 시민들의 지지는 우리의 점거가 서울대 학생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