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456-1 지하 1층. 주소지가 지하로 된 곳이 많은 <2010 한국서점편람> 41쪽에 적힌 ‘보람문고’의 소재지이다. 이곳에서 소규모 서점을 경영하던 김준엽씨는 1주일 전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출판사에서 고인과 만나 결혼하고 10여 년간 함께 서점을 운영하던 부인, 그리고 중학생 남매는 하루아침에 유족이 되었다.

김준엽씨가 스스로 삶을 접은 직접적인 이유는 서점 근처에 할인을 전문으로 하는 판매업체가 개점을 앞두고 있어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흠결투성이인 도서정가제 관련 법 때문에 갖은 형태의 도서 할인 판매가 횡행하면서 소형 동네서점의 기반이 대부분 침식된 상황에서, 인근에 할인 전문점이 등장하게 되면 버틸 재간이 없어 낙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판사와 서점에서 일하며 책 판매를 생업으로 삼았던 한 동네서점 주인의 자살은 책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우리 환경이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보여주는 사회적 비극이기도 하다.

서점인의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점신문>에 따르면, 2002년 <한국방송> 교양 프로그램 ‘좋은나라 운동본부’의 ‘베스트 친절 시민을 찾아라’에서 친절 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의정부 ‘아람서점’ 위무헌 대표가 과로사한 일도 있다. 서점 운영이 어려워 택배 일을 겸하느라 밤낮으로 쉬지 못했던 것이다. 오랜 기간 올곧게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며 봉직하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직을 얼마 전 중도 사퇴한 이창연 ‘도원문고’ 대표는 수년 전에 서울 강동구의 한 서점 주인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고 전한다. 역대 서점조합연합회장 출신이 경영하는 서점이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더이상 희망을 갖기 어려운 이 땅의 중소서점 경영자들을 대변하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출판시장에 일반화된 할인 경쟁은 막가파식으로 번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바탕으로 한동안 번성했던 동네서점들은 대형 할인점, 인터넷서점, 오픈마켓, 그리고 최근에는 소셜커머스 업체가 주도하는 공동구매 방식에 의한 편법 할인으로 대부분 폐업 직전의 상황이다. 신간(발행 뒤 18개월 미만 도서)과 구간을 합해 50％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신간은 정가에서 10％를 할인하고 구간은 최대 97％까지 할인하는 식이다. 구간이라 해도 정가의 3％를 받고 판매한다면 통상적인 저자 인세 10％를 출판사가 부담해서 제대로 정산하는지 의문이다. 출판계가 할인업체의 먹잇감이 되는 현실은 소가 웃을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은 결국 할인을 과도하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현행 도서정가제 관련법 조항 때문이다. 신간 도서라 해도 정가의 19％까지 실질 할인이 가능하고, 그나마 실용서와 초등학생용 참고서는 정가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며, 구간의 경우 무제한 할인이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도서정가제라고 말한다. 심지어 도서관 장서용 도서 판매에도 정가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각종 도서관들은 일반 비품처럼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새로 나온 책을 찾는 도서관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몇 달씩 지체되는 일이 다반사다. 할인을 전제로 한 거품 가격으로 책 구매자는 봉이 되며 할인시장의 파고에 휩쓸린 출판사와 서점, 저자 역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외국의 출판 관계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되묻는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잘못된 법 하나가 책 생태계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책의 가격 파괴는 출판과 지역사회의 문화 파괴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에 국회와 정부가 있다면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