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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과 나 -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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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오면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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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3:1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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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운동과 나 - 이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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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 |
103 |
이름 : |
그날지기 |
작성일 : |
2007-05-09 21:06:25 |
조회수 : |
4,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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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
내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부터였다. 우리 아버지가 관여하고 있던 『자연보호』라는 월간지가 매달 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잡지는 환경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식의 잡지가 아니라 정부에서 요식행위로 펴내는, 그런 성격의 관변지였던 것 같다. 그 잡지에는 농약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백로의 사진이 실리곤 했는데, 이거 보고 엄청 마음이 아팠다. 뿐만 아니었다. 그 무렵부터 TV 뉴스에 두루미나 백로와 같은 멸종위기종들에 대한 소식이 나오면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슬프고 걱정될 수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면 아직 70년대였고, 환경이 보호의 대상이라는 식의 인식 자체가 희미할 때였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환경문제에 대해 내가 나름대로 날카로운 감수성을 가지고있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의식은 '동물보호의식'은 아니었다. 고기 반찬은 잘 먹었고 심지어 초등학교 때는 강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해먹은 적도 있으니까.)
서울에서 나서 자라던 나는 아버지 직장 관계로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전라북도 전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다. 아무 연고도 없고 낯선 곳이었지만 곧 적응해서 친구들을 사귀고 잘 지냈는데, 이곳의 환경이 지금도 생각하면 참 알게모르게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서울에서 살 때에도 변두리에 살아서 산과 개천으로 놀러다니곤 했는데, 전주에 가서도 이런 생활이 쭉 이어진 것이다.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규모의 도시였던 데다가 또 사는 곳이 변두리였다. 그래서 주변에 조금만 가면 산과 논밭이 널려있었고 심지어 내가 다니던 중학교 가는 길에는 방죽과 미나리꽝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5공화국 정부가 일체의 재학생 과외(학원수강을 포함하여)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숙제만 하면(나는 숙제를 빨리 해치우기로 선수였다) 마음대로 나가 놀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3때 나는 전주로부터 전학하여 경기과학고에 입학했고, 누나들은 모두 서울대를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지방 대학교수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집도 두집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한 10년만에 다시 서울로 와서 살게 된 곳이 잠원동 한신아파트였다. 80년대 중반에 이미, 내가 느끼기에도 대기오염도가 엄청났다. 그리고 밤이 되면 웬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떼를 지어 출근하곤 했다(알고보니 이른바 '나가요 걸'들이 두세명씩 같이 자취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어릴적 살던 곳은 도봉구 번동이었는데 그곳의 인상과는 너무도 달랐고, 그 사이에 서울이 이런 곳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참 삭막한 일이었다.
< 결정적인 책, 『원은 닫혀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의 의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배리 카머너(Barry Commoner)가 쓴 『원은 닫혀야 한다』(The Closing Circle)였다. 번역자가 아버지의 친구인 한림대 송상용교수였기 때문에, 속표지에 '누구에게 드림' 이라는 글이 쓰여있었다. 별 생각도 없이 집에 굴러다니길래 한번 읽어보게 된 것이었다.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때였는데, 물론 당시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놀랄 정도로 나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이 책만큼 큰 '사고의 전환'을 안겨준 책은 고등학교 2학년때 읽은 발자크의 소설『고리오영감』과 대학 2학년때 읽은 마르크스의『임노동과 자본』,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다윈 이후』밖에 없는 것 같다.)
카머너에 의하면, 인구가 많아지면 환경오염이 심해진다는 식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환경오염도는 단순히 인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구×1인당 오염물질 배출량'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1/20밖에 안 되지만 미국은 세계 오염물질 배출량의 1/4 이상을 배출한다. 그것은 '1인당 오염물질 배출량'이 워낙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이 책의 전반부에는 각종 환경문제의 사례들을 사건이나 주제별로 실어놓고 있는데, 거기에는 '상승작용'이라는 개념이 사례를 통해 설명되어있다. A라는 요소가 생태계에 투입되면 A'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자. 그런데 A 요소와 B 요소가 같이 투입되면, 이 두 요소의 '상승작용'(서로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작용)에 의해서 A'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기중에 질소산화물만 있으면 오존만 생기지만 여기에 탄화수소가 같이 작용하면 광화학적 스모그가 생긴다. 서울시의 스모그가 바로 광화학적 스모그인데, 이것이 처음 발견된 로스앤젤레스에서 그 원인이 자동차라는 것을 밝히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음이 자세히 서술되어있다. 하나하나의 요소만을 따로따로 고려하는 식으로는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고,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가 '함께' 작용하는 것을 연구해야만 원인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계는 이러한 '상승작용'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는 복잡계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들은 지금 따져보면 별것 아닌 것일수도 있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로서는 이러한 개념이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로도 나는『원은 닫혀야 한다』를 여러번 읽었다. 중학교 때 한번, 고등학교 때 한번, 학부 때 두번, 대학원 때 한번 읽었던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읽혔으며 예전에는 지나치던 부분들이 새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 다닐 때는 이 책을 열심히 선전하여 환경운동에 관심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꽤 널리 읽히는 데 한몫(?)하기도 했다.
< 대학 시절의 의아함 >
88년 대학에 들어가 보니 학생운동이 대학을 휩쓸고 있었다. 나는 1,2학년 때 대학신문사에서 사진기자 일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운동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과나 동문회에서 모임이 있어도 운동가요를 부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운동권이건 아니건간에 적어도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논의들이 당연히 술자리의 술안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의아했던 것은 첫째로 주체사상이나 레닌주의처럼 후진적이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이론에 현혹된 사람들이 왜 이토록 많은지였다. 난 동독(89년)이나 소련(91년)이 망할 때 주변 운동권 친구들과 달리 전혀 동요되지 않았고 심지어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번째로 의아했던 것은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같이 중요한 운동이 왜 중심적인 주제가 되지 못하고 심지어 백안시되는가였다. 나는 뒤늦게 3학년 때부터 마르크스의 저서들을 포함하여 좌파 이론들을 이잡듯이 공부해보았고 그래서 그 계통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한 내공을 인정받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진정한 유물론적(정확히는 중세철학적 맥락에서 唯名論적) 전통에 충실한다면 제아무리 노동운동이 중요하다 해도 현실의 환경문제나 여성문제가 자본-임노동문제로 환원될 수 없음은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접합'이라는 이상한 개념으로 절충될 수도 없는 것이었으며, 환경문제와 여성문제는 말 그대로 자본-임노동문제와는 (접점은 가지고있지만)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있던 나에게, 90년 중요한 계기가 터졌다. 두산그룹의 공장에서 낙동강에 페놀을 쏟는 바람에 큰 난리가 난 것이다. 그리고 91년에는 안면도에서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여 주민들의 격렬한 (파출소가 불탈 정도였다) 시위가 벌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마침 해양학과 등에 있던 친구들과 함께 환경운동 동아리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겨우 네명이서!... 관심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강연회를 열고 공해추방운동연합의 강연자를 초빙하고(당시 환경운동연합은 없었고 그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이 있었다) 여기저기 포스터를 붙여 광고하고... 그래서 서울대 26동 대형강의실에 모인 사람은 겨우 30명. 그나마 열의를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네명이 동아리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4학년 때여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우리는 후일을 도모하며 결국 헤어졌는데... 나중에 2년 있다 보니까 서울대에 갑자기 '씨알'이라는 환경운동 동아리가 생기는 게 아닌가. 세상에... 불과 2년 전에 만들려고 할 때는 아무도 안 보이더니... 불과 2년 사이에 환경운동이 전통적인 학생운동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대학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찾아가 보니 '그렇지 않아도 몇년전에 환경운동 동아리를 시도한 선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고 한번 찾아보려고 하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세상의 時流의 변화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이란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연애를 해보면 항상 느끼게 되는 일 아닌가. 어떤 때는 애타게 불러도 오지않던 여인이 막상 마음이 돌아서고 나서는 쓰윽 다가오는... (그때의 황당함, 반가움, 씁쓸함, 아쉬움이란!)
< 골프를 칠 것인가? >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원 다닐 때 서울대가 캠퍼스를 넓힌다고 관악산을 마구 파헤쳐서 공학관을 포함하여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지을 때, 그때 반대운동을 했어야 했다. 그때 철학과 다니던 최경송(나중에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하다가 과천시 의원도 지냈는데 지금은 뭘 하는지 궁금하다)과 함께 텐트 치고 포크레인 앞에서 드러누워 농성이라도 할까, 하는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최경송은 결국 그 일은 하지 않았지만 일단의 활동가들을 이끌고 삼성동 한국전력 건물앞에서 해골바가지 가면을 쓰고 핵발전 반대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이순신 동상에 방독면을 씌우는 퍼포먼스를 최초로 벌이기도 했다.
반면 거듭된 연애의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가지 고민으로 소심해져있던 나는 관악산이 파헤쳐지고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는 걸 결국 힘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말은 많이 했지만 결국 행동은 하지 못한, 전형적인 힘없는 지식인의 모습을 반복하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나는 환경운동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나이 30 먹은 사람이 하는 소리는 믿지 마라' 는 말은 정말인 것 같다. 나는 요즘 휘발유보다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디젤지프를 몰고다닌다. 늘 디젤엔진이 산화질소나 부유분진을 얼마나 더 내놓는지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몰고다닌다. 예쁜 빨간색 랜드로버 지프. 자랑하듯 보란듯이.
그래도 꼰대는 좀 남아있어서, 분당 메가스터디 원장님이 '타이틀리스트'라는 고급 골프채 아이언 세트를 선물해 주었는데, 아직 2년이 다 되도록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산 많은 나라에서 산깎고 들메워서 만든 골프장... 농약 잔뜩 친 잔디 위에서 '나이스샷'을 날리는 게 영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 이건 꼴깝인 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골프채를 잡게 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그런 나에게 지난 겨울, 관악구 구의원이자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을 이끌고있던 유정희씨가 찾아왔다. 유정희씨의 남편은 서울대 옆 인문사회과학 서점인 '그날이 오면'의 사장이고 난 이 사장님하고 교분이 있었는데, 느닷없이 부인이 찾아온 것이다. 시민자치로 운영되는 환경교육센터를 서울대 사범대 환경교육협동과정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데, 돈이 없어 난관에 봉착해 있으니 기부를 좀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일련의 검토과정을 거쳐 나는 서울대 발전기금으로 5천만원을 사범대 환경교육협동과정에 내고, 환경교육협동과정은 그 돈을 관악 주민환경교육센터 건립에 사용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신림9동 동사무소 건물(요즘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의 일부 공간을 꾸미고 책과 자료를 구입하고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설과 집기를 설치하고 내부 인테리어 하고... 하는 데 쓴 것이다. 이 공사는 올해 6월에 완공되어 '관악 시민환경교육센터 마루' 라는 이름으로 개소식을 가졌다.
며칠전『도날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을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행(자선행위)을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추구할 미덕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날드 덕(만화속 이름은 스쿠루지 할아버지)의 선행의 성격을 지적한 말이었다.
읽다 보니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닌가. 적극적으로 추구할 미덕을 잃어버린 나는, 대신 선행(자선)이나 하게 된 것이다. 나이 30 넘은 사람이 한 이야기는 믿지 말라는 말은, 정말정말 맞는 말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200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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