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세 다카시, <체르노빌의 아이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사고뭉치 아빠 호머 심슨은, 놀랍게도 핵발전소 관리인이다. 예전에 본 한 일화에서 그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의 호출기가 시끄럽게 울린다. 그는 호출기를 쓱 들여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건 뭐야? 엘트 다운(elt down)?" 그리곤 호출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그땐 깔깔 웃었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 후 불현듯 그 기억이 나면서 이번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멜트 다운'으로 치닫는 저 발전소들은 호머 심슨보다는 똑똑한 사람이 관리하는 걸까? 아니, 똑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핵산업을 입안하고 건설하고 유지하고 확장하는 이들-학자, 기업, 관료, 정치인, 언론-은 한 사회의 두뇌임을 자신하는 이들 아닌가? 지진대 위에 있는 나라에 50기가 넘는 원자로를 세워놓고 "이렇게 큰 지진이 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이들은 몽땅 헛똑똑이들뿐이다.

그런 헛똑똑이들은 뒤로 빠지고, 이름없는 노동자들이 '50인의 사무라이'니 뭐니 하는 죽음의 결사대가 되어 사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방사능 연간 최소피폭량-이 기준 자체가 핵산업이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지만-을 일반인의 100배 이상 뒤집어쓰면서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 피폭량 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했다. 그들이 상향조정해주면 안전해지는가?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일반인 기준도 최대치로 올려주면 되지 않을까?

히로세 다카시가 오래 전에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펼쳐 읽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구 소련 체르노빌의 핵발전소가 폭발하여 불기둥이 치솟고 죽음의 재가 사방에 내려앉았다. 이 소설에서 안드레이 세로프는 발전소 기술책임자이자 한 가족의 가장이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갈 것인지, 죽음을 무릅쓰고 발전소로 가서 수습을 할 것인지 망설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직업이 자랑스럽지 않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가족과 슬픈 이별을 하고 발전소로 향한다. 죽음을 무릅쓴다고는 했지만, 사실 죽음이 눈 앞의 불기둥만큼이나 선명한 길이다. 그러니 아무리 발전소 직원들이라도 겁을 먹는 것이 당연하고, 소련 정부는 강제로 직원을 차출하여 결사대로 투입한다. 도망쳐나온 직원은 '인민의 적'이 되어 즉각 총살당한다.

한편 안드레이의 아내 타냐는 열 다섯살의 아들 이반, 열 한살의 딸 이네사를 데리고 주민들과 함께 피난길을 떠난다. 그러나 정부가 완전히 정보를 통제하고 사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주민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가다가 하나둘씩 몸에 생겨나는 이상을 접하고 당황해한다. 몸 내부에서 피가 나면서 반점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며, 갓난아기가 먼저 숨을 거둔다. 이반도 눈이 멀어버린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핵산업과 관련된 정부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후쿠시마 사태 후 일본 정부는 원전 반경 20km만 벗어나면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30km로 재조정했다. 그럼 정부를 믿고 떠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 정부도 만만치 않아, '편서풍' 덕분에 마치 우리가 구름 위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우리 원자로는 '가압형'이어서 일본의 '비등형'보다 안전하다고도 하고(가압형은 비등형보다 더 오래된 모델로 미국 스리마일 사고 당시 원자로가 가압형이다), 심지어 좌파가 국가전복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서 제 아이가 먹는 우유와 채소를 걱정하는 엄마들을 좌파로 몰았다. 정보 통제, 책임 회피, '안전'에 대한 되풀이되는 선전, 비판의 억압-체르노빌, 후쿠시마, 서울은 하나로 통한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란 제목에서 그래도 아이들이 희망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리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타냐와 이반, 이네사는 모두 격리되고, 서로를 애타게 찾다가 아이들은 피폭 후유증으로 죽고 그 시신은 군인들이 트럭에 실어 어디론가 가져가버린다. 타냐는 아이가 죽었다는 통보조차 받지 못한다. 핵 재앙이라는 직접적 원인과 그 공포의 힘을 유지하려는 권력이 결합할 때 가장 처참한 희생양은 바로 아이들이며, 이것이 진실이다. 정녕 희망을 원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핵을 잘 길들이게 될 거야" 따위의 헛된 낙관을 내던지고 비극적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무서워요. 엄마는요? 어떻게 해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우린 어디로 가는 거죠? 폭발 이후로 내 방에 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아빠도 없고, 학교도 없어요. 전부 사라졌어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도 좋은 일이겠죠. 그러나 우습지 않나요? 숨만 붙어 있는 것이 새로운 인생이라니, 그건 사는 게 아니잖아요?"

대안, 대안, 대안.... 이반이 저런 탄식과 함께 죽어간지 25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대안이 없는한 원전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비극을 더 슬프게 한다. 과연 그 25년 동안 대안이 없어서 핵발전은 계속되었던 것일까?

어째서 대학마다 원자력공학과는 차고 넘치면서 재생에너지과는 없을까? 어째서 핵발전소 하나를 돌리기 위해서는 화력발전소 두 개의 전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원전은 청정에너지원'이란 홍보에 파묻히는 것일까? 저준위폐기물처리장 하나는 향후 3백년, 고준위처리장은 10만년을 관리해야만 하는데도 어째서 이것이 '경제성'을 가진다는 얘길까? 이는 대안을 위해 마땅히 투입되어야 할 사회적 노력과 자본을 핵산업이 식인괴물처럼 먹어치우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 배후에는 호머 심슨보다 훨씬 교활한 '동맹'이 있다. 바로 자본과 권력의 동맹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라며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통해 2011년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핵은 '구호'가 아니다. 그건 진실이다. 

그림 - 손문상,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