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가 "가수란 무엇인가, 가수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모든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는 <나는 인간이다>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미셸 깽의 짧은 소설 <처절한 정원>은 참으로 '처절한 딜레마'로 그 질문을 던진다. 30분 만에 읽을 수 있는 분량치고 이만큼 심오하고 재미있는 책을 별로 보지 못했다. 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여 비시 정부를 세운 후다. 비시 정부는 독일군에게 아부하느라 악랄한 법령을 제정한다. 레지스탕스가 테러를 가할 경우 무고한 인질을 붙잡아다가, 72시간 내에 진범이 자수하지 않으면 그들을 처형한다는 것이다. 

혈기넘치는 청년 앙드레와 가스똥은 레지스탕스 요원이 되어 기차역의 변압기를 폭파시키는데, 며칠 뒤 독일군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독일군은 그들이 폭파범인 줄 모르고 인질로 붙잡은 것이었다. 진짜 테러범이 '무고한 인질' 역이 되어 버린 아이러니! 그들은 다른 두 사내(정말 무고한!)와 함께 한 정원의 흙구덩이 감옥에 던져진다. 이들은 쏟아지는 비와 진창 속에 엉망진창이 되어 째깍째깍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떤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질문. 자발적으로 레지스탕스가 된 앙드레와 가스똥은 "우리가 테러범이요. 저들을 풀어주시오"하며 자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구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앙드레와 가스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목숨이 아까워서? 그건 아니다. 어차피 72시간 뒤에 그들은 죽게 되어 있다. 진범이 자기들인데 누가 자수해올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여기에 독일군 장교가 와서 곧 총살을 집행할 테니 누가 먼저 죽을지 정하라고 한다. 인질들은 갈등하다가 결국 제비를 뽑으려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어릿광대가 직업인 독일군 병사 베른이 조언한다. 그는 독일군이면서도 자기 편에 동의하지 않는, 인간다운 선택을 하려는 이다.   

"나는 자네들이 진짜 범인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고 생각해. 중요한 것은 독일군의 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군에게 자네들 전부를 죽이라고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거야.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 논리에 덩달아 춤춘 꼴이 되는 거지. 그러면 도리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

악은 책임을 떠넘기는 데 능하다. 악은 피해자를 '무고한 희생자'와 '부도덕한 불순분자'로 나누어, 무고한 희생자의 고통은 불순분자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짜 악이 누구인가? 독일군, 비시정부, 무고한 인질을 대신 처형한다는 법령 아닌가. 악이 강요하는 이분법을 받아들이는 순간, 정당한 저항은 설 데가 없어지고 모두의 인간성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만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범죄자 조커가 두 척의 배를 인질로 잡아, 살고 싶으면 상대의 배를 폭파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부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영화 속 배의 승객들처럼, 결국 정원의 인질들도 제비뽑기를 거부한다. 

상대를 죽게 하면 내가 산다는 강요된 이분법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나는 인간이다"의 미션이다. <나는 가수다>와 다른 점은, 여기에선 최대한 탈락자가 없어야 승리할 수 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역설적으로 모두가 협력하고 함께 위협에 맞서야 한다. 이는 KAIST 사태가 보여주듯, 신자유주의 경쟁사회가 보여주듯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처절한 정원'의 붉디 붉은 석류 열매처럼, 지켜야 할 것은 언제나 참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