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21주년 노동절을 맞아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기사입니다.

노동절, 청년들은 톱밥처럼 쓸쓸하다

5월 1일은 '노동절'. 검색해 보면 이날은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란다. 헛웃음이 나온다. 노동절이 탄생한 역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의다. 노동절은 언제나 "전 세계 노동자계급 단결과 투쟁의 날"이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은 포털 사이트에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날 '노고를 위로받는' 노동자들은 그래도 행운인 편이다.

노조 조직률이 10%, 비정규직 조직률은 3%가 못 되는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절 휴가는 그림의 떡이다. 특히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럴 텐데,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나마 조끼라도 맞춰 입고 거리 행진을 할 때 그 옆 편의점에선 시급 3900원의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고 있고 대형마트의 주차요원은 휴일에 몰려든 차들 앞에서 열심히 수신호를 해야 한다. 이들은 엄연히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의 날'로부터 완벽히 소외된, 그리고 각자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기형도의 시구를 빌리자면 "청년들은 톱밥처럼 쓸쓸하다."

이들 청년세대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려고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가 뛰고 있다. 나는 이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싶다. 노동절에 낄 곳 없는 청년들에게 청년유니온이 뭉칠 깃발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행정 당국은 온갖 이유를 들어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고 있으며 게다가 기성의 노동조합들로부터도 그리 환대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사업장과 업종에 따라 체계화된 기성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볼 때, "청년노동자 다 모여라"라는 모호한 호명은 못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체계적인 구획에도 불구하고 97%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생각하면, 분명 새로운 실험은 필요하다.

지금 노동절의 주인공은 대기업·정규직노동자들이다. 휴가를 즐기는 이들도,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도 그들이다. 청년·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은 여기서도 '비주류'다. 그러나 노동절을 탄생시킨 주역, 업종과 인종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실천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125년 전 미국에서 바로 이 '비주류'들이 그 일을 해냈다. 그때 시카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세기 말 미국, '또 다른 남북전쟁'

근대 자본주의가 시작된 곳은 영국인데, 어째서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노동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일단 19세기 말 미국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펴봐야 한다.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일하면서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고, 따라서 온 가족이 공장에 나가야만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15세 미만 아이들 넷 중 하나는 일을 했고, 대여섯 살 먹은 맨발 소년이 공룡 같은 방직기계 사이에 들어가 청소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죽거나 다쳐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노동조합은 어불성설이었고, 하루아침에 내쫓기는 일도 십상이었다. 비좁아 터진 노동자들의 아파트엔 화재나 전염병과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칼 마르크스의 딸 엘레노어 마르크스가 미국을 방문하고 나서 "이들의 삶은 영국보다도 훨씬 더 비참하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 생생히 기록했듯이 영국 노동자계급의 처지 역시 문명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열악했던 까닭은 우선 엄청난 숫자의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50년 동안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가 2500만 명으로 이전 50년 동안의 네 배였다. 가령 시카고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 여남은 개의 돌을 던지면, 영어로 욕하는 소리와 기타 외국어로 욕하는 소리를 절반씩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늘어난 이민자들은 저임금·미숙련노동자로 재편되었고, 영어권의 백인 노동자들은 동유럽·중남미·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여겨 기득권을 지키려는 인종 간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885년에는 백인 광부 수백 명이 중국인 광부를 습격해 28명을 살해한 일이 있을 정도였다. 분열한 노동자들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반면, 기업들은 급성장했다. 철도 산업이 앞장섰는데 연방정부는 서부 개척을 위해 인디언을 몰아내고 철도 기업에 무지막지한 특혜를 주었다. 기업이 철도를 1km 연장할 때마다 정부는 2만5천 달러를 대여해주고 주변 토지도 무상 제공했다. 대륙횡단철도를 놓는 동안 중국인 노동자 3천 명이 죽었지만 기업주는 돈을 긁어모았다. 철도 산업의 성장은 철강이나 석유 산업 등의 성장을 부추겨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독점재벌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록펠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 수단으로 1890년에 정유회사의 90%를 손아귀에 넣었다. 록펠러가 소유한 부는 미국 전체의 부의 1.5%에 달했다(빌 게이츠의 3배 정도 된다).

이처럼 계급 사이의 힘이 극도로 불균형했으므로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자비하게 묵살당했다. 파업이 벌어질라치면 기업주들은 '핑커튼 탐정사' 같은 무장 용역깡패들을 데려왔고 노동자들이 격렬히 저항하면 정부의 개입을 요청했다. 주정부나 연방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질서 유지' 명분으로 방위군을 투입했다. 군인들은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법원은 체포된 노동운동가들을 가벼운 벌금이라도 주듯 교수대로 보냈다. 하워드 진이 <미국 민중사>에 썼듯이 이 시기 미국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투쟁은 '또 하나의 남북전쟁'이었다.

역사적인 5월 1일 총파업 그리고 헤이마켓 사건

17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가구공이 된 어거스트 스파이스.

그는 시카고 혁명적 노동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구심이 되어야 할 최초의 노동조합들은 숙련공·남성·백인노동자 중심이었다. 이들은 사업장을 넘어서거나 다른 인종들과 손잡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각성 속에 새로운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그 이름은 '노동자 기사단'이었다. 1869년 결성된 노동자 기사단은 인종과 업종의 경계를 깨고 흑인·여성·미숙련노동자·농민들까지 받아들였다. 재미있게도 이들이 거부한 업종은 은행가·변호사·주류 판매인·전문 도박사였다. 노동자 기사단은 8시간 노동제, 아동 노동 금지 그리고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이란 당시로써는 급진적인 구호를 외쳤다.

"아니, 나보고 흑인과(혹은 중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으라고? 헛소리!" 이런 정서가 뿌리 깊던 때에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기사단의 노력은 선구적이었다. 젊은 이민노동자, 미숙련노동자들이 운동의 중심에 등장했고 나중에는 이들이 조직을 이끌었다. 백인 숙련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냉소적이었으나, 작은 공장에서부터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기업주들의 양보를 얻어내면서 기사단의 세는 급격히 불어났다. 1886년에 기사단은 전국에 6천 개 지부와 70만 명의 회원을 거느렸다.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 기사단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마침 "8시간은 노동, 8시간은 휴식, 8시간은 여가로 쓰자"는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었다. 1886년, 직업별 노동조합의 연합체인 '미국노동총동맹(AFL)'도 결성되어 두 조직은 기업주들을 향해 "8시간 노동제를 수용할 때까지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했다. 일부 귀족화된 노동조합 간부들이 "두 시간 덜 일하면 노동자들은 두 시간 술이나 마시게 된다"며 반대했지만,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5월 1일,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전국적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공장에서 망치 소리가 멈췄고 거리엔 전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부두엔 짐을 실은 배들만 우두커니 떠 있었다. 50만 명이 파업에 동참했으며 대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기계가 멈춘 거대한 대륙에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시카고에서도 4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거대기업인 매코믹 농기구회사는 경찰의 보호를 받아 조업을 계속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동하자 경찰이 진압에 나섰고 총을 쏘아 노동자와 그 가족들 4명을 죽였다. 이 소식은 시카고 노동자들에게 전해졌고, 시카고 혁명적 노동운동의 지도자 어거스트 스파이스와 앨버트 파슨스는 격분하여 항의 집회를 조직했다. 스파이스는 17살에 독일에서 온 가구공이었고 파슨스는 남부 출신의 인쇄공이었는데 그들은 노동자 기사단의 멤버이자 '국제노동자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들은 즉각 자신들이 편집하는 <아르바이터 자이퉁>(노동자 신문)의 호외를 발행했다.

"복수를! 고용주들은 피에 굶주린 경찰을 동원해서 맥코믹 공장에서 여섯 명을 죽였다. 노동자들이여, 무기를 들자!"

하지만 5월 4일에 농산물 장터인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항의 집회는 '겁나게 과격한 연설들과 달리' 온건하게 진행되었다. 3천여 명의 노동자들 앞에서 스파이스와 파슨스, 여러 노동운동가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연설대가 따로 없어 수레를 쌓아놓고 연사들은 그 위로 올라갔다. 밤이 되고 비가 올 듯하자 광장에 남은 노동자들은 수백 명으로 줄었다. 이때 200여명의 경찰이 나타나 위협적인 언동을 하면서 해산을 명령했다.

순간, 경찰들 사이에서 폭탄이 터졌다. 경찰은 총을 뽑아 무차별로 발포했고, 노동자 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2백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찰도 7명이 죽고 66명이 다쳤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자기들끼리 쏜 총에 맞은 것이었다. 집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다음날 신문은 노동자들을 '폭도'라며 맹비난했다. 경찰은 스파이스 등 평소 감시하던 급진적 운동가들을 8명을 체포하고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스파이스 등은 폭탄 투척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고 실제로도 몰랐다. 물증도 자백도 얻지 못하자 검찰은 "스파이스가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거짓 증언자를 내세웠다. 그러나 다른 증인들이 이를 부인하고 심지어 시카고 시장마저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증언하여 검찰의 입지는 불리해졌다. 그러자 검찰은 피고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꾀했다는 쪽으로 재판을 몰아갔고 "이들을 교수형에 처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며 배심원을 협박했다. 판사 역시 한통속이어서 결국 스파이스와 파슨스 등 5명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나머지에겐 15년 이상 징역형이 내려졌다. 폭발의 진상은 어둠 속에 묻혔고, 경찰의 끄나풀이 탄압의 구실을 만드느라 일을 벌였다는 증언이 제기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년 이상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가, 진보적인 시민들이 재판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탄원과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1887년 11월 11일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반성문을 제출하면 감형해주겠다는 회유가 있었지만 이들 중 누구도 그에 응하지 않았다. 스파이스는 형이 집행되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침묵이 지금 우리를 목 조르는 당신들의 목소리보다 더 강해질 날이 올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단결하라!" 결국 희망은 그것뿐

스파이스의 예언대로 그들의 목을 조른 권력의 목소리보다 몇천 배, 몇만 배 커다란 노동자들의 투쟁 소리가 들려왔다. 1889년 국제노동자협회는 파리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미국 노동자들의 역사적 총파업을 계승하여 "8시간 노동제 쟁취,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해 이듬해 5월 1일에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1890년 5월 1일 미국, 프랑스, 독일, 그리스 등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행진을 벌였고, 제철공장의 백인 남성노동자들부터 세탁공장의 멕시코인 여성노동자들까지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노동절의 시작이었다. 영국 하이드 공원에서 행진을 지켜본 노년의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감격에 젖어 말했다. "오늘 전 세계 무산계급이 단결했음을 보았다."

노동절은 "근로자의 노고 위로, 근로 의욕의 고취" 따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이날은 자본이 쳐놓은 무수한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날이며 공동의 투쟁을 결의하는 날이다. 그것이 노동절의 의의이자 존재 이유다. 그리고 125년 전 그토록 열악하던 미국의 노동자계급이 이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민노동자, 미숙련노동자, 흑인노동자, 여성노동자 등 모든 '비주류' 노동자들과도 단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총파업의 주역이자 시대를 초월하여 노동운동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스파이스 역시 당시에 서른 한 살의 청년이자 소파에 가죽을 씌우는 단순작업공이며 이민노동자였다.

오늘날의 보수화된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노동자 투쟁은 격렬했고 또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이유는 미국 노동운동이 백인 숙련공 중심의 기존 틀을 지키려는 세력과 그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려는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가운데 발전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대한민국의 노동운동 역시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지금 그 힘은 너무나 위축되었다. 노동운동의 약화는 사회 구성원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결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희망은 무엇일까? 결국 전체 노동자의 단결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청년·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이 중심에 설 때 가능하다.

이것이 노동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다시 확인하는 과제다. 아직 '청년유니온'이 어떤 미래를 그릴 거라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내가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낯선 길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희망의 싹은 그 혼란과 좌충우돌 안에 있을 것이다. 

2010년 노동절에 참가한 노동자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