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애앵-.

 

밤 8시, 사이렌이 강정마을의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마을회관에서 ‘긴급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었다. 도시와 다르게 고요한 어둠 속이라 그런지 소리는 더 날카롭게 멀리까지 들렸다. 주민들과 자원활동가들이 어디론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경찰과 충돌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 몇 번씩 울리는 사이렌, 경찰과의 대치, 체포와 연행은 강정마을의 일상이다. 연행자 숫자는 지난 3년간 4백 명에 가깝고 구럼비바위 첫 발파가 이뤄진 3월 7일 이후에만 70여 명에 이른다. 최근 <뉴스타파>에 보도된 바 있듯이 연행 과정에서 공권력의 인권 유린은 도를 넘어섰다. 여성 활동가를 옷이 벗겨질 정도로 질질 끌고 가는가 하면 3월 9일에는 호송버스 아래 들어가 막고 있던 국회의원 예비후보(진보신당 전우홍 후보)를 경찰 여러 명이 멱살을 잡고 끌어내는 바람에 차체에 머리를 부딪쳐 큰 부상을 입혔다.

△ 경찰에 포위당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문규현 신부와 장동훈 신부.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기자가 강정마을을 찾아간 3월 12일 오전에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를 경찰이 방해하는 일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과 자원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매일 집회와 함께 108배, 미사, 예배 등의 종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평화적 종교행사마저 가로막은 경찰.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오전 11시, 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하려는 순간 갑자기 경찰들이 달려와 제단 뒤로 방패벽을 쳤다. 미사에 참여하려던 주민과 신도 약 30여 명이 포위되었고, 성난 주민들이 방패를 밀어 붙이자 경찰 뒤에서 마스크 쓴 사복의 남자가 사진채증을 했다. “사진 찍지 마!” “나갈 거야, 비켜!” 항의 소리가 커졌다. 경찰은 한때 항의하는 문규현, 장동훈 신부를 포위하여 쓰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미사까지 막는 건 처음이야. 미사를 왜 막아? 여긴 주민들이 집회 신고 내놓은 자리야. 경찰이 저렇게 막고 있는 것 다 불법이야. 경찰이 법을 안 지켜.” (문정현 신부)

 

한참 뒤 경찰이 물러서서 미사가 거행되었지만, 경찰의 이 행동은 사람들을 자극하여 충돌만 빚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한 평화활동가는 “오늘 해군이 발파를 재개할 예정인데 우리가 막을까봐 (경찰이) 예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서귀포항에서 화약을 실은 배가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연일 이어지는 구럼비바위 폭파

 

구럼비바위는 폭이 약 250미터, 길이가 약 1.2km 되는 단일암반으로 용암이 바다에 급속히 냉각되어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특수한 지형인 이 바위를 해군은 약 45톤의 화약으로 부수어 평탄화하려고 한다. 구럼비바위의 규모가 너무 커서, 해군은 하루에 약 600kg에서 800kg의 화약을 써서 앞으로 3개월간 발파 작업을 계속한다고 한다. 구럼비바위는 물론이고 거기 서식하는 생물종에겐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발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도 현 정부가 이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신당 전우홍 예비후보(제주시을)는 그 이유를 첫째로 ‘보수의 결집’, 둘째로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입히기 위해서라고 본다. 총선 국면에서 안보라는 기치로 보수를 결집시키고, 또 이번 총선에서 여대야소 정국이 만들어진다 해도 그 전에 구럼비바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해놓으면 ‘이제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을 거란 얘기다. 해군과 시공사인 삼성건설이 조바심이 날 만도 하다.

 

철조망으로 출입이 통제된 구럼비바위를 서(西)방파제에서 바라보니,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노란 깃발을 든 평화활동가들이 공사 현장에서 점거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어젯밤에 철조망을 넘어 현장으로 진입한 사람들이다.

△ 구럼비바위 공사현장에 진입하여 시위 중인 평화활동가들.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 포클레인 위를 점거한 평화활동가들.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2시 45분경, 첫 폭발음이 들려왔다. 평화활동가들은 발파 현장까지는 다가가지 못했다. 15분에서 20분의 간격을 두고 네 차례 발파가 이어졌다. 육안으로는 발파 장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채운 다음 뚜껑을 덮고 폭파시키고 있어 먼지만 약간 날리는 정도였다.

 

평화활동가들은 기습적으로 포클레인을 점거했다. 프랑스인 벤자민 모네 씨와 한국인 활동가 김세리 씨가 포클레인에 올라가 가동을 멈췄다. 경찰은 이들을 바로 연행하지는 않았다. 공사현장이 보이는 동(東)방파제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오후 미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고난과 슬픔의 현장을 찾아간다”는 기조로 ‘월요순례’를 시작했고 제주도 강정마을을 첫 순례지로 택했다. 이후 강원도 삼척의 반핵 현장,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도 갈 계획이다. 흰 옷 입은 사제 40여 명이 방파제 위에 서고 아래의 바위 위에서 백여 명의 신도, 주민, 자원활동가들이 미사를 올렸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경찰이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강정에 평화를!”

 

문정현 신부의 외침이 구럼비바위 일대로 퍼져갔다. 평택 대추리로, 용산 남일당으로 늘 거리에 서 있어 얼굴이 새까맣게 탄 노신부는 이곳 강정으로 주소를 옮겼다. 보수언론이 보기에 그는 ‘싸움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고, ‘불순외부세력의 대장’이다. 하지만 평택에서, 용산에서, 그리고 강정에서 누가 진정 외부세력인가? 누가 사람들을 자신이 거하는 곳에서 쫓아내고 공동체를 갈등과 대립의 장으로 몰고 가는가? 바로 국가와 자본이다.

△ 방파제 앞에서 미사를 드리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방파제 뒤로 철조망이 구럼비바위 진입을 막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 강정에 평화를! 소리치는 문정현 신부.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우리는 이들이 초래한 원초적 폭력에는 둔감할뿐더러 심지어 이에 불복종하는 일이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두고 미셸 푸코는 ‘인생의 시작부터 훈육되어온 타자의 통치’라고 비판했다. 주체적인 삶은 자기도 모르게 훈육되어 온 통치에 저항하는 것이라 믿은 푸코라면, 강정 주민들의 5년에 걸친 싸움을 국가 권력에 맞서 ‘삶 권력’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보았을 것이다. 문 신부는 이들의 싸움과 연대하고 있을 뿐이다.

 

미사가 끝나고 십여 명의 평화활동가들이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로 진입했다. 저녁 8시경 경찰은 이들 전원을 연행했다. 사이렌이 울린 것은 그 때문이다. 호송버스를 저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공사현장에 모였지만, 경찰은 방패로 밀어내고 연행자들을 버스에 태웠다. 이날 연행된 열여섯 명 가운데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영국인 앤지 젤터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앤지 젤터 씨는 직접 철조망을 끊어 ‘재물손괴’ 혐의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왜 세계적 평화운동가들이 이처럼 강정에 주목하는가? 해군기지 문제는 국내에 국한된 사안이 아닌 것이다.

 

해군기지, ‘안보’가 ‘안전’을 팔아넘기다

 

제주 해군기지는 입지 선정과 공사 강행의 과정에서 수많은 절차적 문제를 낳았다. 2007년 5월 당시 마을회장은 한 차례의 설명회조차 없이 주민 10분의 1도 참석하지 않은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마을의 공식입장으로 정했고 이를 도지사에게 전달했다. 김태환 당시 도지사는 13일 만에 강정을 최우선대상지로 선정해 국방부에 전달했고, 6월에 국방부는 강정을 해군기지 부지로 최종 선정했다. 그 중요하다는 국책사업이 한 달 만에 결정 완료된 것이다.

 

△ 윤상효씨는 “해군기지는 대국민사기극이다. 우리 마을에 70 넘은 노인들도 이 싸움에 목숨 걸었다”고 말했다.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또 김성한 전 해군참모총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토지 강제수용은 절대로 없다고 약속하고서 이를 뒤집었다. 민군복합항으로 건설하겠다는 약속마저 최근 국방부 대변인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제주기지는 해군기지”라고 못 박은 것처럼 거짓임이 드러났다. 마을 고문인 윤상효씨(76세)는 “이건 대국민 사기극이다. 대통령이 사과부터 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어째서 정부는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것일까?

 

진실은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의 전진기지라는 것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해외 주둔 미군을 ‘전쟁억지력’이 아니라 선제공격이 가능한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분쟁이 일어날 경우, 소파(SOFA) 협정에 의해 미국은 한국의 군사기지를 활용할 수 있다. 일부 보수인사들은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기지가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하지만, 한미동맹에 따라 한국은 해군기지를 미 함대에 개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유사시 한국이 분쟁에 끌려가게 되면 제주 해군기지는 상대국의 유력한 타격목표가 된다. 한국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기능하는 한 제주도는 이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고, 이것을 주민들에게 설득하기가 요원하므로 정부는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남방해역 보호를 이유로 든다. 지금 석유가 남방해역을 통해 수송되고 있는데 그 해역을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기지는 그런 일반적인 기지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기존의 해경을 통해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여기 만들어질 기지는 이지스함, 핵탑재함이 드나드는 전략기지다. 이때 가상의 적이 누구겠는가. 북한이라면 여기에 만들 이유가 없다. 즉 중국을 적국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제주도 남단에 공군기지를 포함한 군사기지 건설 계획이다. 공군기지라고 하면 거부감을 유발하니까 ‘남부탐색구조대’란 명칭을 내걸고 있다.” (전우홍 진보신당 제주을 예비후보)

 

정말 우리는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중국과의 ‘이어도’ 영유권 분쟁에 대비해 해군기지가 필요한 것일까? 정부는 부산에서 이어도까지 23시간이 걸리는 반면 중국에선 18시간이 걸리며, 제주도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면 8시간이면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에 반박하는 주장도 높다.

 

“한국은 이어도 남쪽까지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보고 중국은 이어도가 EEZ상 아직 획정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암초라서 양국 모두 영토분쟁의 대상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수역 문제는 양국이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즉 이어도에 군대를 투입하는 쪽은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리하게 대응하다간 오히려 이어도를 뺏길 수도 있다. 현재 이어도에 해양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해경이 관리하면 된다. 해군기지 대신 제주도 화순항에 해경부두를 강화하여, 정치적으로는 무대응하고 실제적으로 관할하는 것이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반대공동대책위원장)

△ 구글어스로 본 강정포구. 포구를 위에서 막고 있는 것이 동방파제이고 그 위로 구럼비바위와 공사현장. ⓒ 프로메테우스 오준호

어느 나라든 인근 국가와 영토·영해 갈등이 없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근 국가들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적은 잠재적으로 한국의 적이란 셈이다. 국제정세의 다극화 추세로 볼 때 이러한 일방적 시각은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국내적으로 “이어도는 대한민국 관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중국에는 EEZ 경계를 획정하자고 요청하고 있다. 이 문제가 외교적 해결사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 류웨이민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어도를 영토분쟁 대상이 아니라 EEZ 획정의 문제라고 하여 같은 시각을 드러냈다. 요컨대 이어도 문제에 있어 몇 시간 안에 군함이 출동하느냐 하는 것은 문제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것에 불과하다.

 

도리어 한쪽에선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면서, 한쪽에선 중국 위협론을 덧칠하며 초대형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정부의 모순적 태도가 한-중 긴장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해군기지는 문제의 해결책은커녕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2조원 이상의 예산, 천혜의 자연경관과 공동체 문화 파괴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할지 의문이다. 2011년 중국 관광객이 뿌린 외화가 8억 달러인데 그 중국과 긴장을 고조하는 것은 현 정부의 ‘비지니스 프렌들리’에 비춰서도 맞지 않다.

 

결국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대양해군’ 논리의 이면에는,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여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이를 충실히 추종하며 보수 지지기반을 규합하려는 한국 정부, 그리고 해군기지에 투입되는 혈세를 노리는 삼성건설 등 대자본이 있다. ‘안보’는 이들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교집합에 꽂은 깃발일 뿐 실체는 모호하기 그지 없다. 국력을 소모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저들의 ‘안보’ 논리는 국민의 참된 ‘안전’을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