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하일브로너, 윌리엄 밀버그 지음/홍기빈 옮김,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The Making Of Economic Society>

해리포터의 마법사 사회에도 빈부는 있더라. 순혈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악당 '말포이'네는 해리의 친구 '론' 가족을 가난뱅이라고 놀리곤 한다. 실제로 론의 부모는 돈이 없어 자식에게 옷이나 교재를 사주는데 애를 먹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마법으로 돈을 만들면 될 것을! 아니, 그것도 웃긴다. 마법으로 뭐든 불러오면 되는데 돈은 왜 필요한가?

그들의 마법이 이처럼 전능한 힘이라기보다 단지 무언가를 보다 편리하게 행하는 '기술'에 불과하다면, 마법사의 사회도 자원의 희소성과 사람들의 욕망, 그리고 공동체의 생산 능력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조정하고 배분하기 위해 '사회 제도'가 필요하다.

경제를 이해하려면 '사회'를 이해해야

가령, 해리포터 사회에서 누가 생산을 책임지는지 생각해보자. 마법학교의 테이블에 '뿅'하고 차려지는 푸짐한 만찬을 누가 만드는가? 시리즈의 팬이라면 잘 알텐데, 그건 코와 귀가 큰 난쟁이 요정, 집요정들이다. 다시 말해 해리포터 사회는 집요정의 노예노동을 원천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따라서 집요정을 많이 거느린 마법사가 더 많은 부를 누리게 된다. 

"어떤 사회이건 축적된 부가 어떤 사회적 형태를 취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이 드러나게 된다. '누가 잉여를 가져가는가?'야말로 그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를 밝혀내는 등불이 되는 질문인 것이다." -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2장

그렇다면, 해리포터 사회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집요정의 숫자나 생산성만 계산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집요정을 그러한 사회적 위치에 두는 어떤 원리, 관념, 시스템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 사회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아가 그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 이 책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근본적 물음이다. 경제는 신문의 경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수요공급곡선'이니 '한계효용법칙'이니 하는 개념과 이론의 묶음이 아니다. 경제는 인간 사회 속에 묻혀 있으며, 저 혼자 돌아다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중시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 economic society'다. 주변을 보면 최신 경제학 개념이나 주식 거래 동향, 첨단 디지털 상품의 출시 소식을 좔좔 늘어놓으며 경제통인양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지표들은 한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충돌하거나 타협한 결과에 불과하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거라고 할까.

자본주의는 하나가 아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단 하나의 모델로, 그리고 고정불변한 것으로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고, '원래' 소수가 다수를 먹여살려 왔으며, 기업활동의 자유를 규제하는 건 '원래' 나쁜 것이고,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도 잘 되는게 '진리'라고 한다. 여기서 민영화와 한미 FTA는 선이라는 논리가, 재벌규제와 노동조합은 악이라는 강변이 나온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경제가 사회 속에 존재한다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경제도 변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역사를 따라 흥미롭게 보여준다. '상품을 원가 이상으로 파는 것을 죄악시했던' 자본주의 이전 사회로부터, 시장사회가 갖춰지면서 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와, 대공황이란 '폭탄'을 맞은 자본주의가 '공공지출'을 인정하게 된 전환점을 거쳐, 2차 대전 이후의 황금시대와, 미래에 대한 잿빛 불안이 감도는 오늘날까지 경제사 오디세이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자는 어려운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는 달랑 하나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 그런' 자본주의는 '원래' 없다. 위대한 기술적 진보가 사회적 불평등을 부추길 수도 있고, 강한 노동조합  덕분에 사회적 타협이 이뤄져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지기도 한다. 저자가 암시하는 것처럼, 우리에겐 얼마든지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자본주의를 구상할 힘이 있다. 

"모든 사회는... 시장이라는 틀로 조정될 것이며, 모든 사회는 두 가지 부문(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 그럼에도 이 사회들은 여전히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어떤 사회는 높은 이윤을 거두는 데 맞춰져 있을 것이고 어떤 사회는 이윤율은 낮아도 노동이 만족스러운 사회일 것이다. 어떤 사회는 상층 경영 관료들이 기업을 지배할 것이며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회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정면충돌을 벌일 것이며 어떤 사회는 만족스런 이해 당사자 만들기 협정을 발전시킬 것이다." - 같은 책, 15장

경제사 입문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도 있다. '우리와 다른' 자본주의(독일)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