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 <알제리 혁명 5년>. 독립투쟁이 알제리 민중들의 삶과 의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잘 보여주는 '탈 식민화'의 고전.

프랑스 경찰의 '라디오 색출 작전'

“이봐, ‘그 물건’ 숨기고 있지?”

“어이구, 아닙니다요! 저희 가게엔 ‘그 물건’ 따윈 절대 없습니다.”

“흥, 몰래 팔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왔어!”

“어휴, 어느 놈이 그런 벼락 맞을 소릴 합니까요?”

1956년 이후 프랑스 경찰은 시시때때로 알제리인들의 가게로 들어가 무언가를 수색했다. 경찰에 반항하는 알제리 상인들은 무차별 구타를 당하거나 영업 정지를 당하곤 했다. 프랑스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물건은 바로 ‘라디오’였다.

경찰은 식민 당국이 주문 생산하는 라디오를 제외한, 배터리식 조립 라디오가 알제리인들의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그 이유는 바로 1956년부터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송출하기 시작한 ‘투쟁하는 알제리의 목소리’ 방송 때문이었다.

이 방송은 알제리 민족해방군이 어느 프랑스군 초소를 기습했는지, 프랑스군이 어떤 잔인한 학살을 벌였는지 시시각각 전해주었다. 이 방송이 시작되기 이전 라디오는 알제리의 프랑스인들 그리고 당국에 협력해온 알제리인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지금 라디오는 알제리 민중의 ‘인기 상품 1호’로 떠올랐다.

사실 프랑스 당국의 ‘라디오 색출 작전’은 우스꽝스러운 작태였는데, 그때껏 그들은 라디오를 선진 문명의 이기라고 자랑하며 알제리인 사회에 라디오 보급률이 낮은 것은 그들의 미개성을 나타낸다고 멸시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라디오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에서 식민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한 소통 도구로 바뀌고 있었다.

'히잡'의 의미가 바뀌다

저항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 대표적인 예가 ‘히잡’의 착용이었다. 이슬람 문화는 여성의 몸을 최대한 가리는 것을 미덕이라고 가르치는데, 물론 이는 여성을 차별하는 가부장적 관습이었다. 그런데 식민당국은 이를 ‘알제리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낙인찍으며 히잡 벗기기에 나섰다. 프랑스인 고용주는 알제리인 노동자에게 부인의 얼굴을 보이라고 압박을 넣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물론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자 이미 자발적으로 히잡을 벗은 알제리 여성들까지도 “여성해방은 드골의 요구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면서 다시 히잡과 하이크(몸 전체를 두른 전통 복장)를 입었다. 심지어 하이크는 혁명의 무기로까지 진화했다. FLN에 소속된 알제리 여성들은 하이크 속에 삐라, 비밀문서 심지어 총과 폭탄을 숨기고 검문을 피해 돌아 다녔다. 온 몸을 천으로 두른 조그만 알제리 여성이 유럽인의 카페나 관공서를 지나간 후 건물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빈번했다.

히잡의 의미가 부각되었지만, 반대로 여성의 지위는 진보했다. 전통 사회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보호대상이자 종이었던 여성들은, 이제 부모가 중매한 신랑감이 민족해방전사가 아니어서 결혼하지 않겠다며 퇴짜를 놓을 정도로 달라졌다. 여성들은 집안에 갇혀 있기는커녕 게릴라가 되고자 산으로 떠났고 남성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투쟁했다. 통곡과 한숨만 가득하던 전통 장례식은, 프랑스군에 학살된 피해자들을 묻으며 이를 악물고 침묵하는 장례식으로 바뀌어 갔다. 알제리 독립투쟁은 외부의 식민주의를 몰아내면서 내부의 전통적 식민주의 역시 혁명하고 있었다.

식민 시대의 막을 내린 알제리 독립 투쟁

알제리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나라로, 16세기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826년에 프랑스의 식민지로 넘어갔다. 프랑스는 1962년에 물러나기까지 135년 동안 알제리를 식민통치했다. 프랑스는 전통적 부족 사회를 해체하고 주민들을 새로운 행정 단위로 몰아넣었는데, 이는 부족 소유의 토지를 강탈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는 알제리인의 정치행동을 금지하고 집회나 여행의 자유까지도 박탈했다.

본격적인 알제리 독립투쟁이 벌어진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알제리 북부 농촌 일대에서 여러 차례의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알제리 민족주의자들 속에도 의견이 달라, 완전한 무장독립파와 프랑스 연방 내의 자치인정파로 나뉘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알제리인들은 프랑스를 도와 독일군과 싸웠는데, 전쟁에서 이기면 알제리에 자치를 허용한다는 프랑스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약속이 철저한 기만이었음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45년 5월 8일, 프랑스는 2차 대전의 승전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알제리 독립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세티프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알제리인 1만여 명(알제리측 추산으로는 4만 명이 넘는다)이 살해당했다.

이는 알제리 독립투쟁의 방향을 게릴라·테러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릴라 전사들과 망명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1954년에 여러 운동조직들을 결집시켜 FLN을 창립하고 같은 해 11월 1일 오레스 산을 근거지로 봉기를 시작했다. 이날 3천여 민족해방군 전사들이 30곳이 넘는 프랑스 병영, 초소, 경찰서 등을 타격한 것이다. 독립전쟁은 이후 8년간 이어졌다. 영화 <알제리 전투>에서 잘 묘사하듯 수천 건의 도심 테러와 파업이 줄을 이었다.

식민주의자들도 절박했다. 이미 인도차이나에서 패배한 프랑스에게 알제리는 마지막 남은 식민지였다. 프랑스 본국 정부는 1956년에 기존의 5만 주둔군에 20만 병력을 더 보태 알제리를 휩쓸었다. 막강한 화력에 밀린 혁명군은 인근 튀니지로 이동해야 했다. 프랑스군은 튀니지와의 국경선을 봉쇄했지만, 열악하나마 물자와 병력은 끊임없이 알제리 내로 들어갔고 게릴라 투쟁에 새로운 산소를 공급했다.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희생은 프랑스 내부에서도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양심적 지식인 사르트르나 카뮈가 알제리 독립을 지지한 것도 큰 반향을 얻었다.

1958년 9월 알제리 독립운동가들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알제리 공화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식민주의 프랑스는 단말마의 발악으로 자그마치 60만 병력을 알제리에 파병했다. 여기에 미국이 군 장비의 75%를 지원했으며 서독도 3만5천 명의 병력을 지원했다. 여기에 맞서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은 알제리를 지원했으니, 알제리 독립투쟁은 식민 시대의 종언을 두고 백인 세계와 유색인 세계가 벌이는 ‘최후 결전’이 되어갔다.

결국 더 이상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드골은 1961년 11월에 알제리 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투표에 동의했다. 드골은 사실상의 패배 선언인 휴전 협정을 끝으로 알제리에서 물러났고, 1962년 7월 5일에는 국민투표의 결과로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해방의 함성이 거리에 메아리쳤다. 알제리는 8년의 전쟁, 50만에 이르는 사망자, 프랑스 당국의 고문과 강간으로 인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값비싼 대가로 치루면서, 인류 전체를 위해 식민 지배라는 역사의 막을 끌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