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훔쳐보신 적 있는지?

고백하자면 나는 딱 한 번 서점에서 책을 훔쳐봤다. 10년도 전인데, 시내 대형서점에 들렀을 때(대형서점이다. 대형서점!) 정말 갖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땐 주머니가 얇은 학생이었는데, 그냥 나오자니 손목 하나를 끊어서 두고 오는 것처럼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야.’

그만 거기 넘어가버렸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계시처럼 직원도 안 보이는 것 아닌가. 쇼핑백에 슬쩍 집어넣고 나와 버렸는데, 딴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척했지만 아마 누가 나를 봤으면 대번에 티가 났을 것이다. 하여튼 지금은 그게 무슨 책이었던지도 기억이 안 나고, 괜히 찔려서 나중에 같은 책을 한 권 더 사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줬다. 물론 그 서점에는 한동안 들르지 못했다. 서점 입구에 내 사진을 커다랗게 붙여놓고 ‘이 자를 보신 분은 신고 바람! 현상금 ****’라며 써놨을 것 같아서다.

물론 책 도둑도 도둑이고, 도둑질은 나쁜 일이다. 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책에는 사람을 충동하는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가 쓴 <젠틀 매드니스>에는 별의 별 애서가가 다 나오는데, 책을 위해 살인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1830년대 스페인의 수도사인 돈 빈센테는 희귀본을 구하려는 욕망으로 서점 주인, 시인, 사제 등 여덟 명을 죽인다. 그러나 희생자 소유였던 유일본이 돈 빈센테에게서 발견되자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어 체포되는데, 변호사가 어디서 그 책을 한 권 더 구해 와서 “그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니까 돈 빈센테는 흥분한다.  “내가 가진 게 유일본이 아니라니!”

또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밥티스트 데몰랭은 정말 가난했는데, 마지막 남은 푼돈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가 그만 서점 창문으로 보이는 책을 사버리고 만다.  그는 자신의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굶어죽는다. 심지어 앙리 발랑탱 모랑쥬란 사람은 자신의 서가가 무너지는 바람에 깔려 죽고 만다. 1830년대 악명 높았던 강도 제임스 앨런은 책을 사랑한 사형수였다. 그는 사형 집행 후에 자신의 가죽으로 책을 장정하여 자기를 체포한 존 펜너에게 전해달라고 유언을 했다. 이것은 참회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복수?

그런데 나는 저들의 황당한 이야기에 일말의 공감을 한다. 책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엔 선배들의 자취방에서 열심히 책을 사냥했고, 지금도 이사갈 때마다 책 보따리 싸는 게 제일 힘들지만 함부로 버리지를 못한다. 사진에서만 본, 바퀴달린 사다리를 타고 죽 미끄러지며 책을 뽑을 수 있는 거대한 서재를 갖는건 오래된 나의 소망이고. 하지만 책을 소유한다고 꼭 열심히 읽는 건 아닌데, 내 책장에도 아직 읽지 않은, 늘 어서 읽자고 다짐만 하는 책들이 제법 꽂혀 있다. 그런데도 책을 사 놓는 게 좋냐고? 물론이다. 언젠가는 읽게 되니까.

"책은 좋아하는데 잘 읽지는 못해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책 읽는 습관 들이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첫째, 책을 곳곳에 비치하고 여러 권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화장실에 한 권, 침실에 한 권, 책상에 한 권, 가방에 한 권, 사물함에 한 권... 이런 식으로 늘어놓고 손이든 발이든 걸리는 대로 보는 것이다. 왠지 정신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틈새 시간을 독서에 활용하기 좋고 서로 다른 내용이 자극을 줘 흥미가 배가된다. 한 자리에 바위처럼 앉아 정독하는 것만 방법은 아니다.

둘째로는 책 읽는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시간 나면 책도 봐야지"라는 생각처럼 실천하기 힘든 것도 없다. 책 읽기 좋은 한가한 시간이란 절대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이든, 등하교(혹은 출퇴근)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심야의 카페에서든, 주말 오전 3시간 동안이든, 독서 시간으로 못 박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주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머릿속이 맑아져 다른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그러했는데, 그는 매일 40km 이상 이동하며 설교 여행을 하면서 오전 중에는 말 위에서 책을 읽었다. 그는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주전자, 다 낡아빠진 코트 한 벌만 남겨놓고 89세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렇게 살았고 늘 주변 사람에게 말했다. “매일 오전에는 독서만 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하루 중 5시간 이상은 독서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서관과 친해지기를! 학교 도서관이든 동네 도서관이든, 틈나는 대로 서가를 산책하는 버릇을 들이자. 읽고 싶은 책이 있어야 도서관에 가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생기는 법이다. 게다가 도서관은 '네트워크 독서'를 하기에 딱 좋다. 한 주제에 대해 그 분야의 '주저'로부터 개론서까지 다 찾을 수 있고,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훑을 수도 있다. 또한 대형서점에 가면 그 서점과 출판사가 '밀고 있는' 책에 시선이 가지만(한 대형서점에서는 같은 베스트셀러를 일곱 군데에서 전시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그보다는 주체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다. 교양있는 연인들이라면 데이트도 도서관에서 하는건 어떨지? 물론 과도한 애정표현은 삼가주시고.

교육철학자 켄 로빈슨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30년 동안 배출될 대학 졸업자가 지금까지 인류가 배출한 대학 졸업자의 숫자보다 많을 거라고 한다. 학력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은 크게 의미가 없으며 얼마나 실제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급변하는 지식 환경에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 읽는 습관을 지닌 사람이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한 졸업장보다 대접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