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위벌리, <약소국 그랜드펜윅의 뉴욕 침공기>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나라가 있다. 누가? 러시아? 중국? 알 카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름조차 모르는 나라, 길이 8km에 폭 5km의 소국 '그랜드 펜윅'이다. 알프스 계곡에 자리잡은 그랜드 펜윅의 인구는 약 6천 명. 그런데 인구가 늘어 소비가 증가하자, 재정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발상을 해낸다.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 후 바로 져 버리면, '마샬 플랜' 같은 대대적 지원을 받게 될 거라는 계획이다.

그래서 그랜드 펜윅은 23명의 특공대를 뽑아 미국으로 보낸다. 이들은 모두 중세 갑옷을 입었으며 20명은 궁수, 3명은 철퇴를 든 보병이었다. 그들은 가까운 항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항구에서 범선을 세 내어 뉴욕까지 향한다.

그런데 이때가 마침 냉전기였고, 미국은 국가 전체가 소련의 핵 공격에 대비한 방공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세계 최대의 핵 보유국이면서도 다른 나라가 쳐들어 올까 두려워 떠는 미국인들에게, 중세 갑옷을 입은 그랜드 펜윅인들이 나타난다. 초긴장 상태에 있던 미국인들은 마치 화성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패닉에 빠지는데, 그랜드 펜윅 특공대는 어떤 과학자가 개발한 초소형 슈퍼울트라 핵폭탄과 그 과학자를 붙잡아 제 나라로 돌아간다.

전 유럽을 날릴 수 있는 초강력 폭탄을 왕궁의 지하에 보유하자 갑자기 그랜드 펜윅은 세계 정치의 중심이 된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 약소국에 쩔쩔매고, 소련은 소련대로 그랜드 펜윅에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한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가 1957년인 것을 고려하면, 약소국의 발언은 들은 척도 않던 냉전시대의 강대국들을 유쾌하게 비꼬고 있다. 그리고 그랜드 펜윅의 선택은, 자기 같은 약소국을 모아 전 세계 핵무기를 폐기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쥐들이 사자를 꿇어앉힌 셈인데, 책의 원제도 '으르렁대는 쥐(The mouse that roared)'다.

유쾌한 풍자소설이면서 반전소설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자신은 평화의 수호자요 상대는 위협자라면서 막가파식 핵 군비경쟁을 정당화했다. 소위 '상호 확증 파괴', 다른 말로 '공포의 균형'이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었다. 어느 한 진영에 속하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을 보장할 수 없었던 약소국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디에든 붙어야 했다. 그런 약소국이 '물자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과 일단 전쟁을 벌인다니 기발하지 않은가. 비록 우연히 얻은 힘(그 폭탄)이지만, 인류 평화를 위해 그 힘을 사용하는 모습은 과연 누가 강대국이고 누가 약소국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냉전이 끝났어도 여전히 세계에는 2만 개가 넘는 핵탄두들이 배치되어 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겐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다. 그나마 카우보이 조지 부시가 흔들었던 '핵 선제공격론' 카드를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한 것 정도가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최강의 군사대국이며 세계를 발 아래 둔 사자다. 세계에서 군비를 가장 많이 쓰는 15개 나라 중 2위부터 15위까지의 나라의 군비를 다 합쳐도 미국에 못 미친다. (남한은 10위. 2007년 기준)  근데 또 생각해보면, 그 사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이들은 사실 소련이나 중국보다 오히려 베트남, 쿠바, 베네수엘라 같은 조그만 '쥐'들이다.  

 짧지만 재미있고 임팩트가 있다. 특히 마지막 장의 반전에는 크게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