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살생의 부메랑>

- 환경재난과 인류의 생존전략

곽노현발 폭풍이 아니었으면 꽤나 시끄러웠을 일이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발령된 것 말이다. “국립공원에 명박산성 쌓으려는 거냐?”는 비아냥이 나올 만하다. 2008년 촛불시위를 물대포로 잘 껐으니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할 국립공원 관리에 적임자일지도. 더불어 이 책 <살생의 부메랑>의 저자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도 국립환경과학원 원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이전 정권에도 환경 분야 자문을 계속 해왔는데, MB 정권 들어서는 ‘4대강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MB표 녹색정치(그가 흑록색맹이란 말이 있다)의 참모로 활약 중이다보니 이번 인선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지만, 그의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제목만 봐서는 감이 잘 안 오지만 근대 이후 일어난 환경재난에 대해 잘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공기 오염, 식수와 음식 오염, 강과 바다 오염, 방사능 물질과 독극물 누출로 인한 오염 등 여섯 개 분야로 나눠 마흔 한 개의 환경사고를 설명한다. 다소 기술적 설명이 앞서 딱딱한 감도 있지만, 필요한 배경지식이라고 생각된다. 체르노빌 사고처럼 익히 아는 사건 말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고들에 대해 접할 수 있어 좋다.

개인적으로는 ‘러브커낼 사건’이 충격이었다. 1892년, 윌리엄 러브라는 사업가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나는 운하를 만들려다 사업성이 없어 실패하고(그놈의 운하, 참!) 러브커낼(love canal)이라는 거대한 웅덩이만 남겨놓았는데, 1940년대 후커케미컬이라는 화학회사가 이 웅덩이를 인수해서 여기에 산업페기물을 매립했다. 회사는 10년 동안 살충제, 제초제를 포함해서 2만 톤이 넘는 폐기물을 매립한 후 콘크리트를 덮고 이 땅을 나이아가라 시에 기부(!)했다. 그 위에 초등학교와 주택이 지어졌는데, 1970년대 후반부터 아이들과 주민들이 아프기 시작하고 유산율이 증가했으며 꽃과 나무가 말라죽었다.

조사 결과, 새어나온 폐기물이 토양과 물을 극도로 오염시켰음이 확인되었다. 학교는 폐쇄되고 주택은 철거되었다. ‘러브커낼’ 위에 세워진 마을에는 ‘사랑’ 대신 고통이 찾아왔다. 이 땅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할 때,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할 이들은 바로 다음 세대라는 사실이다.

러브캐널 위에 세워진 마을. 지하에 독극물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환경재난이 아니라 환경범죄다

이 책에는 ‘환경재난과 인류의 생존전략’이란 부제가 붙어있는데, ‘환경재난’이란 말 자체가 어쩐지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게 보면 누가 재난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슬쩍 묻히는 느낌이다.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에 ‘지진 때문에 그런 걸 어쩌겠어.’라는 위안 아닌 위안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사고에서 원인 제공자는 명백히 존재한다. 위험한 결과가 충분히 예측됨에도 철저히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원인 제공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이고 무책임한 원인 제공의 대표적인 사고가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독가스 유출 사고다.

1984년 12월 3일 새벽,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유니언카바이드의 인도 현지 공장에서 농약을 만드는 원료이자 독극물인 메칠이소시안이 두 시간 동안 누출되었다. 이 사고로 부근 65평방km 내의 모든 생물이 죽었고, 당일에만 2800명, 최종적으로 집계된 바에 따르면 1만여 명이 사망했고 60만 명이 암이나 각종 질병에 걸렸다. 기계 이상이라고는 하나 도시 빈민가 한 복판에 독가스 탱크를 버젓이 세워놓은 것부터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사고를 단순히 환경재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변명할 여지가 없는 환경파괴요 환경범죄다.

비양심적 기업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조직적이고 악랄한 것이 국가에 의한 환경 파괴다. 미군의 베트남 고엽제 살포는 유명하다. 미군은 1965년 베트남전 개입 직후부터 고엽제인 일명 ‘에이전트 오렌지’를 거의 베트남 전 국토에 뿌렸다. 고엽제가 뿌려진 곳은 밀림이고 논밭이고 초토화되었고 베트남인들이 먹는 콩, 감자 등도 허옇게 말라 죽었다.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이 인체와 생태에 장기적 피해를 줄 것이라는 염려는 묵살되었다.

베트남에 참전한 미군 24만 명이, 한국군 8만여 명이 고엽제 피해 증상을 나타냈는데, 뿌린 이들이 그 정도니 정작 베트남인들의 피해는 어떠했을까? 심지어 미군은 우리나라 휴전선 일대에도 2만 갤런 이상의 고엽제를 살포했고, 남은 것을 칠곡 등 미군기지 내에 폐기 처분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일부 노병들이 4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자신들이 한 행동을 증언하는 동안, 그 일을 지시한 미군 당국은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러나 20세기 최대의 환경범죄 중 하나인 고엽제 살포가 미국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변할 수는 없다.

환경재난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고, 특히 국가와 기업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할 ‘범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저자는 문제의 개선 방향을 상당히 기술적 측면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해결은 기술보다는 정치에 달려 있으며, 이 사회가 무한성장의 개발주의로부터 탈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많은 범죄 사례로부터 더 나은 환경관리기술과 또 그 기술을 관리할 수 있는 ‘부강한 환경선진국’(저자의 다른 인터뷰를 참고하자면)의 필요성을 끌어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귀결이 ‘녹색성장’이라는 기묘한 합성어로 포장한 4대강의 ‘전도사’가 되는 일이라니, 당연한 귀결인지 일종의 전향인지 잘 모르겠다. 강바닥을 포크레인으로 긁어내고 강을 수백 km의 콘크리트 수조로 만드는 4대강 사업이야말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들어가야 마땅할 것 같은데도.

인도 보팔에서 다국적기업의 독가스 누출 사고 희생자들

베트남 고엽제 살포로 인한 신체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