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홈페이지에 책 에세이며 리뷰들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전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몇 권의 번역서를 냈고(<보이지 않는 주인>,2011), 매체에 기고를 하고, 역사 교양서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인문학회'란 동아리의 창립자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그날' 대표님과의 인연으로 코너를 맡게 되었는데, 별로 서점에서 팔아드린 책이 없어서 미안하던 차에 이 일이라도 잘해 '그날 살리기'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덜컥 연재를 수락했습니다.

"심심한데... 그날에나 갈까?"

"좋지. 오늘은 누가 술을 마시고 있으려나..."

새내기 때, '그날이 오면'보다 '그날에 가면'이란 말이 귀에 익숙했습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그날 앞 게시판에는 각종 술자리를 알리는 메모로 가득했습니다. **과 개강잔치, ##동아리 뒤풀이, @@고교 조인트 동문회... 자취방에서 어슬렁어슬렁 슬리퍼를 끌고 그날 앞에 가면, 슬쩍 낄 수 있는 술자리 한 두 곳은 반드시 찾아낼 수 있었지요.

그래도 술자리가 열리자마자 들어가면 뭣하니, 서점에서 다만 30분이라도 시간을 떼우곤 했습니다. 그때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지요. 얼른 달려가 슈렉의 고양이 눈빛을 쏘면서 책 한 권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냐?"

그 당시 선배들은 자주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무슨 책 읽는다고 하면, 그 책은 어떤 내용이냐, 네 생각은 어떠냐, 내 생각은 이렇다 하면서 대화가 오갔고, 이 책도 읽어봐라 하면서 책을 추천해주곤 했습니다. "저 밥도 굶었어요, 한 권 사 주세요" "임마, 밥은 굶어도 책은 사서 봐" 어쩌고 하는 멘트들을 주고 받지만 결국 잘 포장된 책을 선물 받아 뿌듯하게 서점 문을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2011년의 대학생들도 그런 대화를 서로와 나누는지 궁금합니다. 하기야 따끈따근한 신간 소개를 인터넷만 뒤지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도 전 그 당시의 대화들이 그립습니다. 우리들은 단지 책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은 게 아니라 지적 우주의 이쪽 저쪽에서 역사적인 통신을 하고 있다는 흥분을 느꼈습니다. 내가 가슴 먹먹하게 읽은 대목에서 누군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 때,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질문을 길어내는 것을 볼 때, 우리 사이에 모종의 혈맹이 맺어져있다는 두근거림마저 있었습니다.

미국 시인 에머슨이 말한 바,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저는 이 코너를 통해 그런 끈을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책 읽어봤니? 어떻게 생각해?"하며 젊은 지성들에게 말을 걸고, 또 그들의 생각을 들으며 지적으로 자극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은 학술적이거나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책에 대한 비평으로 채워지지도 않을 거구요. 사실 그렇게 쓰래도 능력이 없어서 못 씁니다. 아마 책을 발판 삼아, 사방팔방 둥둥 떠다니는 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인터넷에 많이 있는 신간 소개도 아닐 겁니다. 소설과 고전, 신간과 구간의 경계도 없을 겁니다. 그저 서점에서 차 한 잔 두고 책에 대해 수다떨기 같은, 그런 편한 글을 쓸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맑써라 맑써'가 무엇인지 밝혀야겠군요. 저희 과의 잡기장 이름입니다. '막 써라'에다가 '맑스(marx)'를 붙인 것이지요. 누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입학할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제가 그 이름을 좋아한 이유는, 거기에 제가 바라는 대학 문화가 담겨져있기 때문입니다. '막 써라'는 서로와 소통하고 싶은 열망을, '맑스'는 사회를 진보시키고 싶은 열망을 상징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갖 소통의 매체가 유행하고 있으며 맑시즘이 아닌 다른 수많은 진보의 길이 모색되고 있지만, '소통과 진보'의 열망은 2011년의 대학 사회에서도 여전히 잠재해있을 것입니다. 제 글이 그 열망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