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러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제 방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아이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차분히 사색하고 있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아이가 지금 뭔가를 잘못 삼켜 숨이 막혔을 수도 있다고 ‘부정적으로’ 상상하는 게 나을까? 당연히 후자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일 것이다. 의사에게 검진을 받는다면, 사람 좋은 얼굴로 “모든 건 마음에 달렸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주는 의사와, 조그만 징후라도 말해주며 미리 예방을 권하는 의사 가운데 누구를 택해야 할까?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잘못된 긍정주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밝힌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에 대한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했고, 뉴올리언스 지역의 재난방재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보도가 있었음에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올 때까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측근들이 비관론을 말하는 걸 싫어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유토피아주의와 결합한 긍정주의는 예방할 수 있는 실패와 희생까지도 치르게 한다.

작가는 유방암에 걸린 후 암 치료과정에 깊이 파고든 긍정주의를 접하고 경악했다고 한다. “암은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암은 축복이다.”라는 생각이 환자들의 부지불식중에 강요되고, 이는 긍정적인 생각이 면역체계를 강화하여 암을 물리치게 해준다는 ‘과학적 근거’와 만나 한층 강화되었다. 그러나 생물학 박사인 작가가 볼 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도리어 환경오염이 암 발생에 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주의는 실제 원인을 파헤치는 데 관심을 돌리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태도로만 몰고 가 버린다.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 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작가는 미국인이 ‘긍정적 사고’를 숭배하며 비판적 사고는 내버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시크릿> 류의 주술이 대유행 하고, 불황에도 ‘동기유발 산업’은 급성장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아니면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로 집을 잃어버리더라도 불평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쥐들처럼, 치즈가 왜 사라졌는지 물을 시간에 얼른 새 치즈를 찾아 움직이라는 것이다. 즉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니 현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라도 바꾸자는 얘기다. 작가는 이런 현상을 두고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깊은 무력감이 놓여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런 현상은 종교와 기업 그리고 학계에 의해 더 강화되고 확산되는 중이다. 이미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하느님이 부와 건강을 약속한다는 ‘번영신학’에 속해 있다. 번영신학에서 신은 사실상 나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가? 부를 더 간절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순환논리를 소위 ‘행복심리학자’들은 과학으로 포장한다. “비판적 사고는 인류가 맹수와 자연재해에 위협받던 홍적세에나 어울린다.”는 것이다. 기업은 고용안정에 들일 수도 있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직원들에게 ‘라이프 코칭’ 교육을 시킨다. 그 속에 관통하는 메시지는, 내일 잘리더라도 회사가 아닌 자신을 탓해라, 문제의 원인은 네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불안, 주택압류, 기후변화, 전쟁과 기아 같은 문제가 어떻게 내 책임일 수가 있을까? 정작 그 문제와 관련된 결정권을 휘두른 이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어째서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도리어 높은 보너스와 주식 배당금을 받는가? 긍정적 사고의 가장 큰 폐해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가장 약한 자들이 그 고통을 나눠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닌가? 솔직히 매사에 얼굴을 찡그리고 한숨부터 쉬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우리가 쾌활하게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는 심리학자 줄리 노럼이 말한 ‘방어적 비관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냥 낙천적인 사람은 자기 건강을 과신하고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하여, 비관적인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는 연구도 있다. 긍정적 사고의 반대는 대책 없는 절망이 아니라, 다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나를 둘러싼 환경 전체 즉 사회와 지구의 문제까지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행복의 비결은 이렇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제방을 쌓고,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치료제를 찾아내고, 긴급 구조 요원들을 강화하자!”

이 책을 읽을 무렵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었는데, 현 정부의 그 막강한 긍정주의가 쇠망치를 든 트롤처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벌써부터 경제적 효과가 수십조에 달한다는 낙관론이 대세인데, 그토록 열심히 준비한 서울 올림픽은 대표적인 적자 올림픽이었다. 경쟁도시 뮌헨의 시민들이 환경파괴를 이유로 유치를 반대했을 정도니, 토목에 목숨 건 대한민국 정부가 올림픽을 과연 철저히 ‘자연친화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가 올림픽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댈 정도이고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들도 하나 같이 장밋빛 일색이다. 이러다 또 한 번 ‘긍정의 배신’에 우리와 후손까지도 몸서리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저 스키 활강장이 세워질 곳은 원시림이 보존되어 있는 가리왕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