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기다렸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최근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라는 투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투쟁은 9월 17일, 천여명의 시위대로 시작을 하였다. 투쟁은 더욱 확대되어서 9월 말 10월 초에는 미국 대도시들에서 이에 동조하는 “Occupy X”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10월 5일에는 노동조합과 사회, 노동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집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투쟁을 처음 제안한 단위는 재미있게도, 캐나다 뱅쿠버 지역의 언론단체이다. 비영리, 반소비자주의, 친환경을 표방하는 언론단체, “Adbusters Medai foundation”은 2011년초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투쟁과 비슷한 형태의 시위를 월스트리트에서 벌이자는 제안을 하였고, 9월 17일 많지 않은 시위대를 시작으로 맨하튼 “리버티 프라자”를 점거, 노숙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리버티 프라자”는 911 테러로 붕괴한 세계무역센터 빌딩 맞은 편에 있었던 사유공원이다. 911테러 이후 공원을 재건하면서 지주인 Brookfield Office Properties의 회장 존 주코티의 이름을 따 주코티광장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이번 월스트리트 점령 이후, 공원이름은 점거자들에 의해 “해방광장”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성향은 정치적 무당파,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이들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으며, 풀뿌리적 성격, 리더가 없는 대중적 구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참여단위 중에는 NYC General Assembly와 같은 풀뿌리민주주의 조직도 있지만, U.S Day of Rage와 같이 애국주의적 개혁조직도 있음. 10월 초순부터는 노동조합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음.(국제 서비스피고용인노조(SEIU) 뉴욕지부, 미국철강노동조합(USW), 전국간호사연맹(NNU), 운송노동조합 제 100지회 등)

가장 유명해진 구호는 “Occupy X(OO을 점거하라)”와 “Occupy Together(함께 점거하라)”, “We are the 99%(우리는 99%이다)"이다. 이외에도 “The Revolution will not be privatised(혁명은 사유화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호도 눈에 띤다. 요구는 최초 adbuster의 경우에는 정치에 대한 경제의 영향력을 종결시키겠다는 오바마의 대선공약 이행요구를 하였다. 이외에 미국 상위 1%의 탐욕과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와 상위 1%에 입각해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분노의 표출이 많지만, 일관된 정치적 요구는 정식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위자들의 특징은 장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혹자는 “다중”들의 반란이라고 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일관된 조직과 요구가 없다는 점을 한계로 드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결국 분노의 표출에 그치고 월스트리트의 문제,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회주의자들이나 좌파의 입장의 경우엔, 지도력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사회주의 저널인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는 지도부가 없고, 조직구조가 없는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듯이 10월 6일 페이스북에 조 프리만의 과거 글인 “The tyranny of structurelessness"를 링크 게재해놓았다. 사회주의 조직이 미 민주당을 추종하는 여성주의자 조 프리만의 글을 인용한 것이 못 마땅하기도 하지만, 지도부와 조직구조 부재의 문제를 성급하게 다루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이러한 언급을 하는 것이 “전위를 자임하려는 좌파의 행태비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지도부부재, 조직구조 부재를 찬양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도부와, 일관된 조직구조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고, 이를 언제나 강조해왔다.(나는 해방연대(준) 부설 당조직론 강사이다) 그러나 지금의 주체적 조건에서 성급하게 지도부나 조직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한다.

오랜 세월동안 노동자, 대중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막혀오고 억압되어 온 상황에서 무정형이고 어떠한 요구로 정식화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만드는 것이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이 한다.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오히려 요구의 일관성과 정식화, 조직구조의 형성 등을 강조하고 이를 치우칠 경우에는 대중들의 분노가 충분히 표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민주당을 통해 체제로 수렴, 포섭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와 비슷한 견해는 가디언지의 데이비드 그래버의 기사(가디언 지의 9월 25일자 “Occupy Wall Street rediscovers the radical imagination”)에서도 표현되었다. 그래버는 2000년의 반세계화 운동과 지금의 운동을 비교한다. 2000년와 지금의 투쟁은 모두 낡은 방식의 정당정치에 대한 거부, 급진적 다양성의 포용,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의 강조와 발명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투쟁의 대상이 변화하였다. 2000년에는 새로운 지구적 관료기구(WTO, IMF, 월드뱅크, NAFTA 등)와 싸왔지만 지금은 각 나라의 정치계급들 전체와 싸우기 때문에 공식적 요구를 발표하면 자신들이 반대해 싸우는 정치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미국의 투쟁에 대해 장황한 설명과 평가를 하는 것은, 이 문제를 보면서 뭔가 근본적인 생각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 이면에는 운동의 지양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운동이 자기해방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억압받고 착취받는, 그래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있는 상태에 놓여 있지만,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주체로서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우리의 불만을 대신 해결해줄 영웅을, 대리자를 찾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이 그렇고, 박원순이 그렇다. MB가 싫어서 민주당 중심으로 야권이 뭉치면 뭔가 되리라는 환상을 품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우리의 불만과 분노를 해결해줄, 사회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해줄 존재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라는 사회적 분업에 익숙해진 체 살아왔다. 사회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은 수많은 생산대중, 민중들이 아니라, 지배와 통치에 익숙하고 많이 배운 집단이 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시 해왔다. 이렇게 정치는 생산대중들과 분리되어 지배계급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자본주의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시킨다. 자본주의는 현상적으로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정치와 경제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경제부분에서의 착취와 억압은 정치적 억압, 강제와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평등한 계약자로서 계약을 맺는 외양을 취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외적 강제는 은폐되어 버린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정치는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와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틀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중이라는 인식은 약화되고 대중을 대신한 영웅이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선거제도는 이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데, 어떠한 대중들의 분노와 불만도 투표를 통해 걸러지고 결국 개인의 공약과 정책으로 수렴되어 버린다. 이러한 틀은 계급사회가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자본주의가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근본원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전히 잘 먹히고 있다.

반면 맑스주의는 이러한 틀을 부정하고 넘어서길 요구하는 사상이다. 맑스주의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업을 철폐하고 노동자들이 사회와 생산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동맹한 민중이며, 노동자계급은 다른 누군가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 바로 사회주의의 핵심적 내용이다. 맑스주의의 핵심적 사상인 자기해방운동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정말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고자 한다면 꼭 가슴에 새겨야할 사상이며, 한국에서든 세계적인 차원에서든 더욱 절실해지는 사상이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분노하고 투쟁하되, 이 분노와 투쟁이 결국에는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분노와 투쟁이 남이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자각해야 한다. 나는 지젝에 대해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가 인용한 바 있는 속담만은 거짓이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들은, 민주당도 오바마도, 박원순도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