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 적대적인 자본주의

-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서평

 

 

※ 이글은 2007년 서울대 공대에서 발행되고 있는 “과학기술과 인간”에 실릴 서평으로 작성된 것이다.

1. 

 

장마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고 무덥던 여름의 열기도 가신 9월 초순이 되어서도 일주일이상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한편 생각해보면 한여름의 최고기온이 35℃～36℃를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을 반추해보자면, 몇 년 전만해도 최고기온이 30℃초반에 불과하였다는 경험을 비추어볼 때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2℃오르는 것은 느낌으로도 확실한 것 같다. 이 모든 일은 다 알다시피 지구온난화라는 지구적 생태 재앙 때문이다.

한편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주변에서 생태운동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우리의 “하나뿐인 지구”가 위기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적신호가 온 사방에서 울리고 있지만, 이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회운동의 힘은 허약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크게는 급진적 사회운동이 사회전반에서 퇴조하고 보수우익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상황, 자본주의가 산출하고 있는 모순에 대해서 둔감해지고 오히려 이를 능동적으로 용인하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생태주의 운동이 생태위기라는 현실의 문제를 뚫고 나아갈 자신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또한 크게 작용하고 있다.

 

 

2.

대개의 신사회운동이 그러했듯이 생태주의운동 또한 자본주의 체제 뿐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역사적 조건이 있었다. 따라서 생산양식이나 생산관계라는 맑스주의의 전통적 시대구분을 비판하고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주의까지 자연에 적대적인 체제/세계관으로 바라보면서 이 둘을 극복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체제의 전환을 꿈꿔왔다.

그러나 기존 생태주의는 지금의 상황을 평가해보면 긍정적인 결과들을 많이 산출하였으나, 결국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과 생태주의적 사회를 만드는 것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볼 수 있겠으나,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논리 자체가 자연에 대한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파괴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를 이러저러한 핑계로 용인하는 한 지구적 생태위기의 극복은 요원한 일이다.

한편 자본주의의 극복과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맑스주의는, 생태주의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근본적으로 맑스주의는 생산력제일주의, 경제주의 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반생태주의적이라는 비판에서부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구적 생태위기에 직면하여 그 근본원리를 바꾸고 생태주의적 사고를 수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논의조차 최근에 들어서는 큰 이론적 진척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3.

이러한 상황에서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의 논의는 가뭄 속의 단비,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존 벨라미 포스터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포스터는 오리건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편집자를 맡고 있다.

먼슬리 리뷰가 1949년 매카시즘 열풍 속에서 출간된 맑스주의 잡지였으며 이후 지금까지 묵묵하게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잡지라는 점에서 포스터의 성향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포스터는 특히 생태학과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연구성과는 하나같이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최근 존 벨라미 포스터의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원제 Ecology Against Capitalism)의 한국어 번역 출간은 포스터의 연구 활동에 대해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4.

존 벨라미 포스터는 시종 일관되게 맑스가 생태주의적이지 않다는 맑스주의 외부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내부의 비판에 대해 맑스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주의(Prometheanism)”적(그에 의하면 이 용어는 어떠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극단적 약속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정이라고 명하면서 이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맑스는 생태주의적 유산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포스터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 포스터는 맑스가 독일의 생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로부터 받은 영향을 발굴해내었다. 포스터에 의하면 리비히는 자본주의 농업의 약탈적 성격에 대해서 적극적인 폭로를 하였다고 한다. 이미 영국에서는 19세기 약탈적 자본주의 농업에 의해 토지의 지력이 쇠하는 위기를 맞이하였으며, 토지의 지력을 회복하기 위한 비료의 입수가 사활적인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카톨릭의 신자들이 묻혀 있던 카타콤의 시신들이 약탈되어 비료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의 웰링턴이 맞붙은 워털루 전투의 사망자들 또한 지력회복을 위해 이용되었다. 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은 죽은 자의 안식조차도 불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약탈적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비료를 획득할 수 없자 초석과 구아노를 얻기 위한 대대적인 폭력과 약탈이 자행되었으며, 포스터는 이를 “구아노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포스터는 이러한 리비히의 분석과 당시부터 지속불가능성을 보여 준 자본주의 농업의 현실은 맑스가 생태주의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고 본다.

 

 

5. 

또한 포스터는 맑스의 사고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끄집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물질교류(metabolism,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의 역자는 신진대사라는 번역어를 택하고 있다)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이해를 위해 포스터 자신이 인용한 맑스의 글을 재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 인간과 지구의 신진대사적 상호 작용을 방해한다. 즉, 인간이 식량과 의복의 형태로 사용한 토양의 구성 요소를 토양으로 되돌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토양 비옥도를 높이는 영구적 자연조건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 농업에서 진보란 노동자를 강탈하는 기술의 진보이며, 토양을 강탈하는 기술의 진보를 의미한다. 특정 기간 동안 토양 비옥도를 증가시키는 진보는 비옥함을 지속시키는 원천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보일 뿐이다. ……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모두 훼손함으로써, 오직 사회적 생산과정을 조합하는 수준과 기법만을 발전시킬 뿐이다.”

“ 더 고차원적인 사회-경제 체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를 특정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하게 보일 것이다. 심지어 사회 전체나 국가, 모든 사회를 합쳐서 생각한다고 해도 이들은 단지 점유자이자 수혜자일 뿐 소유자일 수 없다. 그리고 훌륭한 가장들이 그렇듯, 후손들에게 좀 더 나은 상태로 물려줘야 한다.”

포스터는 맑스의 물질교류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현재 생태적 위기는 자본주의가 낳은 "물질교류의 균열"(the rift of metabolism)에 있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은 맑스가 고민해왔던 관계의 문제, 즉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맑스의 사고를 밝히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위기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크나큰 이론적 돌파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앞서 맑스주의에 대한 생태주의의 비판에 대해 잠깐 언급한 바가 있지만, 맑스주의 내부에서는 주되게는 맑스주의의 공황론/위기론을 자연으로까지 확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거나(제임스 오코너의 이차모순론), 맑스주의의 생태주의적 재구성(테드 벤튼)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자는 맑스의 사고를 공황/위기론이라는 경제적 분석에 한정시키면서 오히려 맑스주의적 생태주의에 대한 사고의 깊이를 제한하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맑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곡해에 기반하고 있다.

포스터는 이런 기존의 생태맑스주의(Ecologist marxist)에 대항하여 “맑스의 생태학”(Marx’s Ecology)을 제기하고 있다. 이 “맑스의 생태학”은 포스터의 이론적 저작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제기하고 있는 물질교류라는 개념은 맑스의 생태주의적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개념적 사고의 약점에 빠져 물질대사라는 개념 이면에 있는 맑스의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고가 더욱 풍부하게 이해되고 발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잊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6.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는 마지막 장 외에는 포스터의 이런 이론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포스터의 생태주의적 사고 속에서는 생태계 파괴의 진정한 원흉으로 자본주의를 파악하고 있으며, “맑스의 생태학”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 또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교류의 균열을 회복하는 사회로 사회주의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평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쉽게도 맑스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고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못하고 넘어가지만, 존 벨라미 포스터의 “맑스의 생태학”(Marx’s Ecology, monthly review press) 역시 조만간 출간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고 이 책이 출간되면 이와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간의 존립을 위협하며 지구적 생태 위기를 양산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고양시키고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