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보내주시는 책들 말도 못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진작 고마운 마음 담은 답신 썼어야 했지만, 이렇게 늦어졌어요. 죄송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송경동 시인의 신간은 그렇지 않아도 보고싶어서 바로 어제 주문했었던 책이예요! 내일 공장 출역 가면 주문을 취소해야겠습니다. 취소가 안된다면 뜻밖의 선물 받았듯, 저도 공장 서재에 선물로 한권 꽂아두면 될테지요.

처음 보내주신 책이 (제가 처음 받은)사이로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공'-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였네요. 이후 C.더를라스 러미스의 책, 스테판 에셀과 이건범까지 모두 잘 받아보았습니다. 보고싶은 책을 말하라 하셨는데, 저는 왜려 그날이오면에서 골라 보내주신 책을 받아본 쪽이 훨씬 소중한 독서의 경험이 되었어요.

매번 같은 책을 각 소의 동지분들께 보내주시니, 서신으로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하구요.

가령 사이로 준이치와 C.더글라스 러미스 같은 경우는 평소같으면 게으르고 편식적인 독서 성향상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을, 보내주신 책 읽으면 매우 시의적절한 공부 할 수 있었어요.

'민주적 공공성'의 '친밀권'이론은 마침 징역초기, 아들을 감옥에 보내게 되신 저의 아버지께 소개해드려 부자간의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된 소중한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중략

저 자신, 구속 직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고립되고 침잠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감옥에서 연대의 끝을 이어지는 속에 말할 수 없는 어떤 전망과 희망을 느끼면서 달라졌고, 아버지께도 이런 기운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무어라 스스로와 세계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책들이 성좌들처럼 길을 알려주었고, 좋은 별들을 알려주신, 또 연대의 소중함을 책의 온기로 전해주신 그날이오면에 감사한 마음 커요. 

그야말고 선물과 같은 후원이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려고, C.더글라스 러미스도 한권 더보고, 아렌트도 샀는데, 아렌트는 아직 못보고 있네요.

요즘 읽는 책이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공장의 같이 지내는 분들과 이런저런 대화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고 - 조금 쉬는 기분으로 송경동 시인의 신간을 읽으려 했는데,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쉰다'는 표현이 영 거슬리네요...

요즘 느끼는 부분들, 특히 무기수 형들과 대화하며 느끼는 것이 많은데, 설명할 수 없고, 정리가 안되어서 머리가 복잡했어요. 보내주신 책 읽으며 생각하느라 말라붙은 마음에 물을 적셔야겠습니다.

항시 잘 읽고 있습니다. 나가면 꼭 한번 찾아뵐께요.

편지를 다 쓰고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버리고 싶은 편지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꼭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러고보니, 어릴 때 아버지께서 '그날이 오면'을 암송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삼각산이 일어나고 강물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던, 저는 시구 하나 제대로 못 외네요.

그때 마음속에 그려보던 이미지만은 지금도 기억이 나요.

감옥에서 함석헌 선생 공부를 조금이나마 하였는데, 셀리의 시 '서풍의 노래'를 선생이 아끼셨다고, 마지막 시구는 선생의 비석에까지 새기셨다고...

예연의 나팔 소리를 외치라,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왔거든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봄이, 그날이, 올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나비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동지들이 보내준 연대의 실로 칭칭 저의 고치를 짤 수 있었기 때문일거예요.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씀 드리며, 해도해도 부족한 감사의 인사 줄일께요.

2012. 1, 10.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안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