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태 지리교육학과 박사과정

녹두에는 1988년에 문을 열어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날이 오면’이란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책만 파는 흔한 서점이 아니다. 서점 홈페이지가 밝히듯이 “단순한 책 판매 이상으로 사회진보를 위해 고민하는 공간”이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인문사회과학서적에 대한 높은 관심 덕에 인문학서점은 서울 곳곳에서 생겨났었다. 심지어 「창작과 비평」을 읽지는 않아도 ‘폼’잡으려고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기가 지난 이후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보여주듯 개인 간 각개전투의 일상화, 한미FT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화 그리고 88만원 세대가 출현하게 됐다. 이같은 사회 추세에 따라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도 자연 낮아졌고 오늘날 ‘그날이 오면’은 간당간당하게 숨만 쉬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서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도 자연스레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령 인문사회과학의 고갱이인 맑스의 대표작 『자본론』을 통해 이같은 현상을 이해해보자. 반세기동안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자본론』은 공산주의를 찬양한 이적물이라는 선입견을 받아왔다. 하지만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수많은 모순과 장애에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한 ‘자본주의 안내서’이다. 학문적으로는 인문사회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전이며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정확한 리트머스 종이다.

따라서 학부시절 『자본론』과 같은 인문사회서적에 대한 독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레 어려워진다.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이 읽는 논문에 나오는 맑스의 개념을 몰라 수시로 배회하는 난감한 상황을 겪을 것이다.

신입생들이 당장 맑스의 『자본론』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인문사회과학서적 읽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시공간인 한국사회를 다룬 책부터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첫걸음으로 삼길 권한다.

추천하고 싶은 책들은 최근에 ‘그날이 오면’에서 많이 팔린 책들을 참고해 보자면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오연호와 조국의 『진보집권플랜』, 한겨레 기자들이 쓴 『4천원 인생』이 있다. 『4천원 인생』은 기자들이 감자탕집, 대형마트, 가구공장, 난로공장 등에 직접 취업해 여성, 청년, 이주 노동자로서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동안 손님으로 익숙한 공간들이 어떻게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알몸’인지를 보여주는 엑스레이 광선이다. 장하준의 『23가지』는 ‘알몸’을 강요하는 시장주의가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인지에 의문을 품고 시장주의자들의 23가지 믿음을 간결한 논리와 재치 있는 필체로 공박한다. 오연호와 조국의 『플랜』은 이러한 ‘알몸’에 따뜻한 옷을 입히기 위한 실천적인 고민에서 출발해 경제, 사회, 통일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치열하게 사유하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읽을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신입생 학우들이 인문사회과학서적의 폭넓은 독서와 깊은 토론을 경험하고 졸업한다면 각자가 서있는 위치는 다르더라도 현재의 상호 불통(不通)인 ‘어른들’보다 더 지속가능하고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한 ‘그날’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밤에는 녹두에서 좋은 사람들과 흥겨운 자리를 갖는 것도 좋지만 낮에는 잠깐 ‘그날이 오면’에 들려 좋은 책을 읽는 여유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